22일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지나가는 사람 한 명 찾아보기 힘든 적막한 산골이다. 빈집이 태반이다. 그런데 마을 곳곳에 ‘상동광산 개발을 환영합니다. 파이팅!’ 같은 현수막이 걸렸다.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내걸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니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1950년대 우리나라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텅스텐 광산. 값싼 중국산 텅스텐에 밀려 1994년 폐광했는데 최근 텅스텐 가격이 치솟으면서 30년 만에 다시 문을 열고 채굴 시설을 깔고 있다. 텅스텐은 다이아몬드만큼 단단하고 3400도 초(超)고온도 견딜 수 있는 광물로, 반도체와 로켓 등의 필수 재료다. 중석(重石)이라고도 불린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이 성장하면서 10㎏당 가격이 최근 5년 새 188달러에서 319달러로 70% 뛰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텅스텐 - 지난 1일 경북 울진군 쌍전광산의 갱도 안. 광산 직원이 광물을 찾아내는 '미네랄라이트' 장비를 켜자 암벽이 푸른빛을 내며 보석처럼 반짝였다. 이게 텅스텐이다. 1983년 문을 닫은 쌍전광산은 다음 달부터 다시 텅스텐을 캐낼 예정이다. /울진=조인원 기자

덩달아 마을도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모처럼 중국집도 문을 열었다. 주인 이아윤(43)씨는 “광산을 다시 개발한다고 해서 가게를 차렸다”며 “평일 점심때는 인부들이 줄을 선다”고 했다. 마을 주민 방정환(49)씨는 “상동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동네”라며 “옛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설렌다”고 했다.

1970년대 상동은 ‘강원도의 명동’이라고 불렸다. 전국에서 장정(壯丁)들이 몰려와 작은 마을에 3만여 명이 북적였다. 당시엔 시외버스 정류장도 있었다. 다방, 요정(料亭)도 여럿이었다. 그래서 “상동에선 강아지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산업 구조가 바뀌고 중국산 텅스텐이 세계 시장을 잠식하면서 광산은 1994년 문을 닫았다. 이후 30년간 마을은 쇠락했다. 지금은 노인 등 1000여 명이 농사를 짓고 산다.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읍(邑)이다. 흔한 수퍼마켓도 없어 차로 40분 거리인 태백까지 가서 장을 본다. ‘지역 소멸’이 걱정될 정도다.

남은 주민들은 지난 30년간 희망과 절망을 오갔다고 했다. 원래 이 광산은 공기업인 대한중석이 갖고 있었으나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거평그룹에 매각됐다. 그러나 1998년 IMF 경제 위기 때 거평은 부도를 맞았다. 이후 외국 회사에 팔렸다가 2015년 캐나다의 광업 회사 알몬티 인더스트리즈에 인수됐다.

그래픽=김하경

가끔 재개발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닫혔던 광산 문은 최근 첨단 산업이 호황을 맞으며 최근에서야 꿈틀대기 시작했다. 첨단 산업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재료로 텅스텐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텅스텐의 몸값이 뛰면서 채산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세계 텅스텐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중국산 텅스텐이 곧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알몬티는 채굴 설비 공사가 마무리되면 내년부터 텅스텐을 캐낼 예정이다. 추정 매장량은 최대 5800만t. 우리나라 연간 텅스텐 수입량(약 8000t)의 7200배다. 강동훈 알몬티 대한중석 기획 및 기술이사는 “단일 광산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품질과 경제적 가치도 높아 글로벌 경쟁력을 충분히 갖춘 곳”이라고 했다. 경제적 가치가 6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알몬티는 우선 미국으로 텅스텐을 수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중에 국내 시장에도 공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내년 재가동을 앞둔 강원 영월군 상동광산 갱내에서 직원들이 광산안전DX시스템을 이용해 작업 환경을 점검하고 있다. 상동광산엔 LTE망을 활용한 광산안전DX가 구축돼 실시간으로 위험 요소의 제어가 가능하다. /알몬티

영월군과 알몬티는 지난달 상동읍에 텅스텐 가공 공장을 짓기 위해 업무협약을 맺었다. 알몬티는 이를 위해 1000억원을 투자한다. 영월군 관계자는 “영월에 새로운 일자리 1800여 개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영월군은 2027년까지 25만㎡ 규모의 텅스텐 산업단지도 만든다. 최명서 군수는 “텅스텐은 영월의 미래다. 채굴한 텅스텐을 가공해 첨단 산업의 핵심 소재를 만드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텅스텐 바람은 과거 상동광산과 ‘쌍벽’을 이뤘던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광산에도 불고 있다. 쌍전광산에서는 막힌 갱도를 다시 만드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쌍전광산은 1983년 문을 닫았다. 지난해 국내 기업인 지비이노베이션이 독일 회사가 갖고 있던 쌍전광산을 인수했다. 김용우 지비이노베이션 대표는 “다음 달 갱도가 완공되면 곧 채굴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쌍전광산에 매장된 텅스텐은 약 200만t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