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로에서 발생한 싱크홀(땅 꺼짐) 사고 현장에서 경찰 관계자가 깊이를 측정하고 있다. 땅 꺼짐 크기는 가로 6m, 세로 4m, 깊이 2.5m로 측정됐다. 이 사고로 도로를 달리던 SUV가 통째로 빠져 운전자 등 2명이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로 인근에서 30일 오전 8시 40분쯤 도로 침하가 발견돼 교통이 통제됐다. 전날 싱크홀(땅 꺼짐) 발생으로 운전자 2명이 중상을 입었던 지점에서 약 30m 떨어진 곳이다. 서울시가 29일부터 이곳 일대를 점검한 결과 사고 지점 건너편 도로 지하에 공동(空洞)으로 의심되는 곳도 추가로 발견됐다. 서울 도심에서 연일 도로가 내려앉는 상황에 시민들은 불안을 호소했다. 이날 오전 연희동에서 만난 시민 김모(52)씨는 “자동차가 완전히 추락해버린 모습에 많이 놀랐는데, 이젠 운전하기도 겁난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에 매년 100개 이상의 싱크홀이 발생한다. 2021년엔 142개, 2022년엔 177개, 작년엔 161개가 발생했다. 최근 5년간 발생한 싱크홀은 957개로 매월 16개씩 발생한 꼴이다. 싱크홀 면적을 합치면 약 2.9㎢다. 그간 여의도 면적만큼 땅이 내려앉은 것이다. 같은 기간 2명이 죽고 49명이 다쳤다. 차량도 81대 파손됐다. 정부와 지자체 등이 그간 수차례 대책을 마련해왔지만 여름철 폭우 등으로 향후 싱크홀 사고가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양진경

최근 5년간 발생한 싱크홀 중 절반 이상(57.4%)이 상하수관 손상 등으로 발생했다. 주로 낡은 파이프에서 물이 새면서 토사가 유실, 도로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 상하수관은 총 40만㎞ 정도다. 이 중 노후관은 약 7만2500㎞로 전체의 18%가량이다.

서울시는 시내 노후 상하수관 교체·세척에 3조원 가까운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두일 단국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상하수관은 도시 인프라의 핵심”이라며 “향후 싱크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예산을 우선 편성해야 한다”고 했다.

연이은 싱크홀 사고에 서울시는 올해부터 지하 공동 탐사 횟수와 구간을 대폭 늘렸다. 하지만 레이더 성능 등 한계로 이번 연희동 싱크홀 같은 사건을 모두 예측하긴 어렵다. 지하 2m까지 탐지 가능한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 싱크홀 사건은 2.5m 깊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원철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6~7m까진 들여다볼 수 있는 장비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이번에 연희동 인근에서 하고 있던 빗물 펌프장 공사가 싱크홀 사고 원인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조사 중이다. 이 공사로 지하수의 흐름이 불안정해져 사고 지점의 토사가 유실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각종 건축·토목 공사가 잦은 서울의 지하 상황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대학장은 “공사할 때는 수시로 지하의 빈 공간을 메워줘야 한다”고 했다.

정밀한 지하 지도를 만들어 도심 지하에 설비와 배관 등이 어떻게 얼마나 들어 있는지 파악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현행법에 따르면 지하에 시설물을 매립하면 상세 내용을 구청에 보고하게 돼 있으나 제대로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 등이 관리하는 ‘지하 공간 통합 지도’ 역시 형식적으로 작성돼 사고 예방에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