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2학기 개강을 앞둔 대학가가 수강 신청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0일 조선대 수강 신청 홈페이지에선 다른 학생 학번을 입력하고 일부러 비밀번호를 5회 이상 틀려 수강 신청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선대 관계자는 “수강 신청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자행한 범죄로 추정된다”며 “범인을 추적해 업무 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대는 ‘일단 고발을 하면 취소가 불가하니 지금이라도 자수하라’는 전체 문자도 발송한 상태다.

대학가 수강 신청 대란 10여 년 넘은 고질적 문제다. 만성 취업난이나 로스쿨 등 진학 경쟁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학점을 받기 쉬운 인기 과목 등에 몰려 수강 신청 서버가 다운되는 일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수강 신청 경쟁이 단순 과열을 넘어 범죄로까지 비화하고 있는데도 비싼 등록금을 받는 대학과 교수들이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수강권 사고 팔기’는 일상적 풍경이 됐다. 최근 2학기 수강 신청 기간이었던 서울대 익명 커뮤니티에는 ‘죽음의 과학적 이해’ 과목을 20만원에, 5개년 ‘족보’(시험 기출 문제)까지 묶어서 22만원에 판다는 글이 올라왔다. 의대 법의학교실에서 개설한 이 강의는 과제가 없고 시험이 한 번뿐이라 인기가 높다. 이번 학기 경쟁률은 5.77대1이었다.

고려대에선 수강 신청 종료 1시간 전부터 강의 거래 ‘경매장’이 열린다. 수강 취소를 한 뒤 30분~1시간가량 시간이 지나야 다른 강의를 신청할 수 있는 ‘수강 신청 지연제’가 이때부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감 직전 긴급한 사정 등으로 강의를 변경해야 하는 학생을 위한 선의(善意)로 마련한 시간이지만 고려대 학생들은 “강의를 사고팔 마지막 기회”라며 온갖 익명 카톡·텔레그램 대화방 등으로 몰려든다.

강의를 사고자 하는 학생은 이 카톡방에 들어가 판매자와 강의 취소 시간을 조율한 뒤 돈을 주고받는다. 최근에는 익명 송금이나 네이버페이, 문화상품권 번호를 활용한다. 강의를 구매하는 사람이 신고를 해도 판매자가 누군지 알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강의 판매 경험이 있는 이모(22)씨는 “판매금이 10만원이면 먼저 7만원을 받고 수강 신청이 성공하면 남은 3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최근엔 아예 수강 신청 대행 전문 업체까지 등장했다. 한 업체는 “업계 최고의 성공률과 서비스로 고객님들의 성공적인 신청을 책임진다”며 “후회 없는 선택, 완벽한 결과를 보장한다”고 했다. “매번 떨리는 대학교 수강 신청, 수년에 걸쳐 쌓아놓은 저희만의 노하우로 수강 신청을 대신해드린다”고 했다. 각종 콘서트 예매나 골프장·결혼식장·부동산 청약 등 모든 선착순 예매를 대행해준다는 이들 업체는 매크로(반복 입력 프로그램)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업무 방해 목적이 없다면 이런 매크로나 대행 업체 사용이 불법은 아니다.

한양대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의 한 학년 정원은 130명이지만, 전공 필수 수업 정원은 60~100명에 불과하다. 서강대 컴퓨터공학과의 한 전공 필수 과목의 경쟁률은 2.35대1이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도 사정은 비슷하다. 신림동 PC방으로 달려가 마우스에 안마기를 올려놓고 ‘자동 클릭’으로 수강 신청을 시도하는 학생들이 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에 재학 중인 김한들(21)씨는 “최근 취업난으로 인문·사회대생들도 코딩 등 컴퓨터공학 강의를 들으려고 몰려든다”며 “대학 당국이 학생들의 강의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세종대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은 수강 신청 홈페이지 해킹을 시도하다가 적발됐다. 해킹이 이뤄지기 전 학교 전산실에서 이를 감지해 사전 차단했다. 이들은 “전공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 인원을 늘리려 했다”며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다고 한다. 학교 측은 이들에게 유기 정학 1년을 내렸다.

서울대 유성호 교수는 자신의 강의가 20만원에 거래되는 현상과 관련, “다수 학생들이 수강을 원하는 과목은 수백 명이 들을 수 있는 ‘초대형 강의’로 개편하고, 등급별 학점 대신 합격·불합격 평가만 내리는 강의를 늘려 불필요한 수강 신청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