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오후 5시쯤 방문한 제주시의 한 약국 앞(왼쪽사진). 간판도 중국어로 되어 있고, 고객 대다수가 중국인이었다. 가게 내부는 "니하오" 등 중국어로 소통이 대부분 이뤄지고 있었고, 종업원들도 한국어에는 서툰 모습이었다. 제주시의 한 베이커리 메뉴판의 모습(오른쪽 사진). /김병권 기자

휴가철이던 지난달 14일 오후 5시쯤 제주시에서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제주 동문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중국어로 호객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상점 앞에서 큰 소리로 중국어로 손님을 불러 모으던 여직원은 중국인 부부 관광객이 가게 앞에 멈춰 서서 제주도 감귤 초콜릿, 우도 땅콩 샌드 등을 구경하자 시식을 부추기며 중국어로 상품 설명을 했다. 이곳에서 20년째 제주 특산품을 팔고 있다는 박모(42)씨는 “체감상 중국인 관광객이 배로 늘어서 지난 2월 중국인 직원을 고용했다”며 “전통시장에도 중국인 손님이 90%라 하루 종일 한국말 듣기가 어렵다”고 했다. 기자가 이날 동문시장 내부를 돌아다니는 내내 중국어가 끊임없이 들렸다.

제주도의 ‘중국화(化)’가 가속화하고 있다. 역대급 엔저 현상으로 가까운 나라 일본으로 향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늘고, ‘바가지 해산물’ ‘비계 삼겹살’ 등 각종 논란이 연이어 터지면서 제주도로 여행을 가는 내국인들의 발걸음은 뜸했다. 작년 한 해 1266만여 명의 한국인이 제주도를 찾았는데, 이는 전년도에 비해 8.3% 감소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엔 여기서도 약 8% 줄어든 592만여 명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반면 제주도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 6월까지 68만8095명으로 작년 동기(7만9409명) 대비 766.5%가 늘었다. 올해 상반기 관광객만도 코로나 전인 2018년(66만6120명)의 관광객 수를 뛰어넘었고, 이런 추세로는 2019년 관광객 수(107만9133명)도 넘을 전망이다. 전통시장뿐만 아니라 제주도 골목마다 중국어만 적힌 간판이 늘어섰고, 상점과 식당 등에도 앞다투어 중국어로 된 메뉴판과 중국식 전자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섬 전체가 중국인과 중국 자본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박상훈

이튿날인 지난달 15일 정오쯤 방문한 제주시 연동의 한 뼈해장국 전문점엔 손님 24명이 9개 테이블에 나눠 앉아 점심으로 뼈해장국을 먹고 있었다. 모두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이 식당뿐만 아니라 이 골목 뼈해장국 전문점 두어 군데를 더 살펴봤지만 식당마다 중국인들이 빼곡했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주모(46)씨는 “우리 가게 매출의 80%가 중국인 손님일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며 “원래 주변에 뼈해장국 가게가 우리 식당을 포함해 2개뿐이었는데, 중국인들이 워낙 좋아하는 메뉴이다 보니 올해 들어 근방에 5곳 정도가 더 생겼다”고 했다.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 동네엔 ‘뼈해장국 골목’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주씨는 중국인 관광객과의 소통을 위해 올해 초부터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만석인 가게에 중국인 관광객 두 명이 들어오자 주씨는 능숙한 중국어로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중국인 입맛을 맞추지 못한 식당은 문을 닫기도 한다. 전국에 총 9개의 카이센동(일본식 회덮밥) 전문점 ‘오복수산’을 운영하는 임동훈(45)씨는 작년 7월에 제주시 애월읍에 새로 열었던 지점을 약 1년 만인 지난 6월 말 폐업했다고 했다. 임씨는 “제주도는 지금 내국인 관광 경기가 안 좋고 중국인들이 관광 수요를 떠받치는 추세인데, 카이센동의 주재료인 회는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 문을 닫게 됐다”고 했다. 내국인 관광객 수요가 줄면서 회와 초밥 등을 내놓는 오마카세(맡김 상차림) 위주의 식당들도 다수 문을 닫았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일본식 선술집을 운영하는 김모(44)씨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주중 저녁 예약도 꽉 찼는데 요즘은 중국인을 못 잡으면 장사가 아예 안 되니 마라 소스를 첨가하거나 튀김류를 늘리는 식으로 메뉴를 조금씩 변형했다”며 “특히 날것은 중국인들이 먹지 않는다고 해 고민이 많다”고 했다.

전통시장이나 요식업뿐만 아니라 제주도 관광과 관련한 대부분의 산업에 중국인의 경제력이 뻗쳐 있는 모습이었다. 제주도에서 29년째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는 임모(67)씨는 “제주도 기사들 중 중국인 대상 장거리 운행만 받는 사람들이 있어 간혹 내국인 관광객들로부터 ‘제주도는 택시가 없나’라는 민원을 듣기도 한다”며 “야간에 중국에서 입국하는 공항 손님만 받아도 연봉 6000만~7000만원은 벌 정도로 관광객이 많다”고 했다.

최근엔 중국에서 주로 쓰이는 전자 결제 시스템 ‘알리페이’ 등도 제주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제주 동문재래시장과 서귀포매일올레시장 내 ‘알리페이 플러스’의 결제 금액이 지난 3월 약 1700만원이었으나, 지난 5월에는 15배 정도 증가한 약 2억5000만원이었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가맹점도 제주도에서 급속도로 늘고 있다. 알리페이, 위챗페이의 한국 공식 대행사 ICB KS 가입센터를 운영하는 이공세(51)씨는 “제주도 내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가맹점은 작년에 비해 70~80% 정도 늘었고, 중국인이 많이 가는 제주시 연동 등에는 가맹 업체가 전체의 50~60%에 달한다”고 했다.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제주시 면세점과 호텔 주변에는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식품점이 다수 몰려 있는데, 이 중엔 가격이 중국 화폐 위안화로 표기된 곳도 있었다. 이 상점의 중국인 직원과는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조차 어려워 번역기를 통해 대화할 수 있었는데, 이 직원은 “위안화로 가격이 쓰여 있긴 하지만, 한국 화폐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는 제주도 특산품뿐만 아니라 마파두부 소스, 고량주 등 중국 식료품도 다수 판매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유독 제주도를 찾는 이유에 대해 김의근 제주국제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제주도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중국인들이 비자 없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고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가깝다”며 “중국은 남쪽과 동쪽 등 해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내륙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는 중국인들에게 여행지로서 매력이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며 관련 범죄나 각종 문제도 늘었다. 지난 6월에는 제주의 한 대로변에서 중국인 관광객으로 추정되는 아이가 바지를 내리고 용변을 보는 모습이 포착돼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외국인 범죄 중 피의자가 중국인인 경우가 매년 60% 내외다. 특히 작년에는 중국인 강도 범죄가 16건에 달했는데, 이는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수치(8건)의 2배다.

중국인 관광객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들이 빠져나가면 서울 명동의 경우처럼 섬 전체에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현재 중국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혹여 중국 정부와의 갈등으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면 제주도 경제 자체가 휘청할 위험이 있다”며 “과거 일본인과 중국인 등 외국인만을 겨냥해 영업했던 명동 상권이 국경이 닫혔던 코로나 때 완전히 무너졌던 것처럼 제주도도 텅 빈 거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