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의 한 미술학원에서 내건 시니어반 원생 모집 포스터./독자제공

지난달 18일 경기 성남시 한 음악 학원 드럼 레슨실에서는 회색빛 머리칼의 이풍세(81)씨가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에 맞춰 드럼을 치고 있었다. 이씨는 “심장 박동 같은 비트 소리에 맞춰 드럼을 두드리니 정신도 맑아지는 기분”이라며 “팔이 후들거릴 정도로 연습하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고 했다. 지난 7월 초 문을 연 이 학원은 50세 이상 원생을 주로 모집했다. “은퇴 후 건전한 취미를 갖고 싶다”는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또 다른 수강생 이모(65)씨가 펼쳐 놓은 악보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에는 형광펜 자국이 가득했다. 이씨는 “1970~1980년대 유행하던 록 음악에 대한 동경이 있다”며 “은퇴도 했으니 드럼, 보컬, 색소폰 모두 배워 평소 좋아하던 음악을 직접 부르며 연주하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날 만난 수강생들의 평균 연령은 71.7세. 모두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었다.

유소년 인구가 줄고 고령 인구는 늘면서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시니어(senior)반’을 개설하는 학원이 생기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유소년(0~14세) 인구는 548만5245명으로 최근 5년간 15%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93만8235명으로 같은 기간 29% 늘었다. 이에 주로 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학원들이 저출산·고령화 흐름에 위기감을 느끼며 ‘액티브 시니어(활동적 고령층)’로 대상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종시에서 미술 학원을 운영하는 20년 차 학원 강사 고모(43)씨는 이달 초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시니어반’을 신설했다. 기존에는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 가르쳤지만, 인근 초등학교 두 곳의 1학년 학생 수가 각각 작년 168명에서 올해 130명으로, 141명에서 128명으로 감소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운영 계획을 바꿨다고 했다. “저출산을 체감했다”는 고씨는 “경기도 안 좋아 올해 신입 원생 수가 작년보다 20~30%는 줄어든 것 같다”며 “오죽하면 학원 강사들이 노인 복지 자격증을 따겠냐”고 했다.

부산 연제구의 한 피아노 학원은 작년부터 화요일 저녁과 수요일 오전에 시니어반을 운영한다. 현재 두 반 모두 정원이 마감돼 수강하려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젊은 시절 피아노 전공을 꿈꾼 퇴직 교사,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고 싶은 요양보호사 등 수강생들의 이력도 다양하다. 최고령 수강생은 70세다. 이 학원 부원장 김윤옥(48)씨는 “코로나 전후로 학생 수가 40%는 줄어 걱정이었는데 마침 근처 문화 센터에서 피아노를 배우던 어르신들이 수업을 듣고 싶다며 찾아왔다”며 “시력이 안 좋은 어르신들의 특성을 고려해 음표가 큰 악보를 준비하곤 한다”고 했다.

지난달 18일 오후 경기 성남시의 한 음악 학원에서 이풍세씨가 드럼 연습을 하고 있다./강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