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 현장에 대한 합동 감식이 22일 진행됐다. 경찰은 이 불로 숨진 방화 용의자 이모(61)씨가 방화에 쓴 도구가 당초 추정했던 농약 살포기가 아니라 세차장에서 쓰는 고압 분사기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이날 오전 소방, 한국전기안전공사 등과 방화 사건이 벌어진 아파트에서 합동 현장 감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감식 결과와 인근 CCTV 영상 등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숨진 이씨의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 경찰은 “이씨가 유서를 남기기는 했지만 정말 자살한 것인지, 방화 중 불이 붙어 숨진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국과수는 이날 “불로 인한 사망”이라는 1차 구두 소견을 냈다.

이날 현장 감식에서는 아파트 내부 곳곳에 설치된 방화문이 열려 있는 상태였다. 법적으로 방화문은 언제나 닫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의무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안전 관리 책임자를 추가 입건할 방침”이라고 했다.

경찰은 용의자 이씨가 불을 지를 때 쓴 도구와 기름통 등도 분석해 달라고 국과수에 요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도구가 거의 타버려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름통에 들어 있던 액체 성분과 정확한 범행 도구가 무엇인지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고 했다. 앞서 경찰은 이씨가 방화에 사용한 도구가 농약 살포기로 추정된다고 했었다.

경찰은 전날 화재 현장에서 이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도 확보해 국과수에 디지털 포렌식을 의뢰했다. 경찰은 이를 통해 방화 도구 구매 과정 및 계획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필요시 이씨 자택 압수 수색도 진행한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방화 용의자 이씨는 따로 직업이 없고, 정신병력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방화 관련 전과는 없지만 20여 년 전 무면허 음주 운전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악구는 ‘이재민 현장 접수 창구’를 설치해 피해 가구 현황을 파악한 뒤 이재민을 위한 대피 시설과 급식비 및 숙박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도 화재로 인한 피해 가구 복구와 주거 이전에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