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 천문학 저널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습니다. 영국 카디프대 연구팀이 금성 대기에서 생명체의 존재를 증명하는 ‘포스핀(phosphine·PH3)’ 가스를 발견했다는 것이에요. 지금까지 과학계에서는 지구 밖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행성으로 화성을 꼽아왔어요. 대기가 있고 자전 주기도 지구와 비슷한 데다 물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제는 화성이 아닌 금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루가 1년보다 더 긴 행성
태양계에는 행성이 8개 있습니다. 태양에서 가까운 것부터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죠. 지구와 가장 가까운 행성은 금성과 화성입니다. 다만 실제 거리를 보면 지구에서 금성까지 거리는 약 5000만㎞(이하 최단거리 기준)이고 지구와 화성 사이 거리는 약 7000만㎞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이웃은 금성이죠.
금성은 맨눈으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어요. 어스름히 어둠이 깔릴 무렵 서쪽 지평선 위에 낮게 뜬 밝은 별처럼 보이는 게 금성입니다. 그 모습이 아주 또렷하고 밝은데, 하늘에 있는 천체 중 태양, 달 다음으로 밝아요. 스스로 빛을 내는 별(항성) 가운데 지구에서 볼 때 가장 밝은 시리우스 별보다 25배나 밝답니다. 색깔도 노란색으로 아주 예쁘죠. 그래서 서양에서는 금성을 가리켜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비너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금성은 독특한 행성입니다. 스스로 도는 자전 주기가 243일이고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 주기가 225일입니다. 지구의 자전 주기가 1일(24시간), 공전 주기가 365일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해요. 즉, 자전이 공전보다 느린 것이죠. 그래서 금성의 하루는 1년보다 길답니다. 또 금성의 자전 방향은 지구와 정반대라서 해가 서쪽에서 뜨고 동쪽으로 집니다.
◇고압·고온의 가혹한 땅, 금성
20세기 중반만 해도 많은 사람이 금성에 관심을 가졌어요. 사람들은 금성을 아열대 기후를 가진 지상 낙원으로 상상했답니다. 1960년대부터 소련과 미국이 금성에 탐사선을 여러 번 보냈지요. 흑체 복사(물질이 내뿜는 복사열) 온도를 계산했을 때 금성의 표면 온도가 27도 수준이니 생명체가 살 만한 곳이라고 예상한 거예요. 지구의 흑체 복사 온도가 영하 18도인데 온실효과 때문에 지금의 기온(평균 15도)을 유지하고 있으니 금성의 표면 온도도 기껏해야 지구보다 수십 도 높을 것이라 생각한 거죠.
하지만 1962년 12월 14일 금성에 처음으로 근접 비행한 미국 탐사선 매리너 2호가 측정한 금성의 표면 온도는 무려 450도에 달했습니다. 1967년 소련의 베네라 4호는 금성 대기권에 들어간 뒤 엄청난 대기압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어요. 같은 해 금성을 지나간 매리너 5호가 측정한 결과 금성의 대기압은 지구의 90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1970년 12월 금성에 사상 최초로 착륙한 베네라 7호는 겨우 23분간 간신히 자료를 수집했지요. 이후 1985년까지 소련의 베가 1~2호가 금성을 탐사했어요. 뜨거운 표면의 열기를 막아가며 조각조각 어렵게 얻은 자료를 모아서 오늘날 금성의 본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금성 대기의 대부분(96%)은 이산화탄소였습니다. 이것이 지구의 90배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압력으로 땅을 짓누르고 있었죠. 거기에 섭씨 450~460도에 달하는 초열 지옥입니다. 공기가 활발한 대류를 일으키는 ‘대류권’도 지표면에서 80㎞까지(지구는 10㎞) 존재하기 때문에 평균 풍속만 초속 360m가 넘습니다. 한반도 역대 최강 태풍 매미의 초속이 60m인데, 고온과 고압을 고려하면 금성의 폭풍이 얼마나 대단할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거기에 구름은 고농축 황산으로 이뤄져 있어서 황산비가 내립니다.
이런 가혹한 환경 때문에 최근 30년가량은 금성 탐사 대신 화성 탐사가 활발하게 이뤄졌어요. 화성은 한 번 보낸 탐사선이 수년간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는데 반해 금성은 탐사선이 며칠을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수지가 맞지 않았죠.
◇생명체의 증거, 포스핀 발견
이번에 금성에서 발견됐다는 포스핀은 인 하나에 수소 세 개가 붙어 있는 형태의 분자입니다. 유기 물질의 분해로 발생하는데, 보통 생명체 활동의 증거 지표로 여겨져요. 마늘 냄새나 썩은 고기, 썩은 생선 냄새 같은 참기 어려운 악취가 나지요. 다만 금성과 같은 높은 기온에서는 수소가 우주로 다 날아가기 때문에 수소 원자가 세 개나 포함된 포스핀이 발견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금성에서 포스핀이 발견됐다는 것은 극단적인 고온·고압 환경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화학 작용이 일어났거나, 대기 중에 어떤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해요. 이번 발견도 연구팀이 외계 행성에서 포스핀을 관측해 보기 전에 연습 삼아 금성을 관찰하면서 검출한 것이라고 합니다. 저서 ‘코스모스’로 유명한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금성 대기 속을 떠다니는 부유 생명체에 대해 상상한 적이 있는데, 그런 것이 정말 존재할 가능성이 펼쳐진 것이죠.
포스핀이 검출된 금성의 상층 대기는 지표면에 비해서 기압과 기온이 낮습니다. 지구 지표면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해요. 따라서 평생 땅을 밟지 않고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형태의 생명체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거죠.
물론 포스핀이 존재한다고 해서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100% 확신할 수 없다는 이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화성뿐 아니라 금성에도 탐사선을 다시 보내서 실제 생명체의 존재를 제대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요. 화성과 금성, 어디에서 생명의 흔적이 먼저 발견될 것인지 궁금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