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867년 10월 14일(양력 11월 9일)은 일본에서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대정봉환’이란 ‘큰 정치를 다시 돌려준다’는 뜻으로, 일본 막부(무사 정권)의 쇼군(將軍)이 천황에게 국가의 통치권을 돌려준 사건을 가리켜요.
일본은 12세기부터 무사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쇼군이 실질적인 통치권을 갖고 나라를 다스렸어요.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였지요. 이를 ‘막부 정치’라고 합니다.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에도 막부 시대로 이어지며 막부 정치는 600년 이상 지속되었지만, 결국 19세기 중반 대정봉환이 이루어지며 막부 정치가 막을 내렸어요. 그렇다면 쇼군은 왜 자신의 권한을 천황에게 돌려주었던 것일까요?
◇개국 문제로 분열된 막부 시대
19세기 일본은 안팎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어요.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은 군함 4척을 이끌고 일본에 들어와 무력 시위를 하면서 일본에 통상을 요구하였어요. 나라의 문을 열지 말지를 둘러싸고 막부 주요 대신들과 다이묘(봉건 영주)들 사이에서는 의견 대립이 지속되었지요. 여기에 쇼군의 후계 문제까지 겹쳐지며 대립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당시 에도 막부의 실권자였던 이이 나오스케는 쇼군의 후계자 문제에 깊이 개입했을 뿐만 아니라 천황의 허가도 없이 미국과 통상조약에 조인했어요. 고메이 천황은 이 사실에 크게 분노했고, 그동안 막부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번(藩·다이묘들의 영역)들이 천황에게 힘을 실어주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전국에는 270여 개 정도의 번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서남 지역에 있던 사쓰마, 조슈번은 세력이 큰 번들이었어요. 그렇지만 이들은 1600년 일본에서 전국의 다이묘들이 두 세력으로 나뉘어 벌인 ‘세키가하라 전투’ 때 히데요시가(家) 편을 들면서 에도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에게 처벌을 받았고, 이 때문에 에도 막부 시대 내내 중앙 정치에 깊숙이 참여할 수 없었죠. 이들은 개국 문제로 인해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고 민중 봉기가 발생하며 반(反)막부 감정이 커지자 이를 자신들의 세력 확대 기회로 삼았습니다.
특히 조슈번은 소금·종이 등 특산물을 많이 생산하고 있었고, 항구 시모노세키를 끼고 있어서 교역으로 얻는 수입이 컸어요. 그러나 외국과의 통상을 독점하는 막부 정부에 큰 불만을 느끼고 ‘존황양이(천황을 높이고 오랑캐(서양)를 배척한다)’라는 입장을 세웠지요. 반면 사쓰마번은 막부의 개국 방침을 지지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된다고 생각해 개국 지지 입장을 세웠습니다. 막부가 조슈번을 정벌하러 갈 때에도 막부에 협력했어요.
◇메이지 신정부 시대 열어
‘양이’ 정책을 앞세우던 조슈번은 결국 영국 등 서양 연합 함대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양 무기의 우수성을 눈으로 확인한 조슈번 무사들은 이를 기회로 군비를 정비하는 등 개혁을 실시해 나갔지요. 사쓰마번도 군비 확충을 꾀하는 개혁을 실시했어요. 물론 막부도 프랑스의 도움으로 군사력을 강화하는 등 나름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그 방향은 쇼군의 절대권을 강화하는 것이었지요.
결국 조슈번과 사쓰마번은 막부의 독단적인 정책에 반발하며 ‘토막(막부 타도)’ 방침을 내세우고 손을 잡았습니다. 여기에는 도사번 출신이자 오늘날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 무사 사카모토 료마(1835~1867)가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그의 도움으로 조슈번은 사쓰마번을 통해 외국에서 다량의 무기를 구입했고, 1866년 양번은 군사동맹(삿초동맹)을 맺게 되었지요.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왕정복고라는 구호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자신의 번 세력을 유지하고자 했어요. 전 도사번주였던 야마우치 도요시게는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막부의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이 같은 의견서를 받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다이묘들이 막부에 적대적인 상황에서 이를 수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게이오 3년인 1867년 10월 14일, 대정봉환을 단행하였습니다.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그해 12월 9일 무력 정변을 일으켜 천황으로 하여금 직접 ‘왕정복고 대호령’을 발표하게 했어요. 쇼군 요시노부는 사직하고 막부를 폐지하며 천황 조정 내에 총재, 의정, 참여 3직을 설치하는 등의 내용이었지요. 이렇게 일본의 정치 체제는 ‘메이지 신정부’로 넘어가게 되었고, 675년에 걸친 막부 정치(1192~1867)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메이지 신정부는 서구 근대국가를 모델로 하는 대대적인 제도 개혁에 나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