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100페소(약 1400원·사진)에는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유명한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이 실려 있어요. 유명한 뮤지컬 작곡가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들어 1978년 영국에서 초연된 뮤지컬 ‘에비타'의 주인공이 바로 에바 페론입니다. 극 중에서 에바가 부른 ‘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가 유명하죠.

/세계화폐연구소

그녀는 1946~1955년과 1973~1974년 두 차례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낸 후안 페론의 부인이었죠. 33세이던 1952년 암으로 숨질 때까지 남편과 함께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 파격적인 복지 정책을 펼쳐 국민의 지지를 받고, 인기가 높았죠.

에바는 1919년 아르헨티나 동부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작은 마을 로스톨도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에바를 법적인 딸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에바는 15세에 가출을 해서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갔어요.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에바는 극단의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예술적 재능이 있었고, 성공을 향한 열망이 강했던 그녀는 삼류 연극배우로 시작했지만 모델, 라디오 성우 등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1944년 에바는 아르헨티나 군부의 실력자이자 노동부장관이었던 후안 페론 중령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정부가 후안 페론을 체포해 가둬버려요. 에바는 후안 페론의 석방 운동을 벌였는데, 당시 에바의 열정적인 연설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딸이라는 그녀의 출생과 인생 역경이 빈민층과 노동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아르헨티나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일으켰고 파업 10일 만에 후안 페론이 석방됩니다. 후안 페론은 1945년 에바와 정식으로 결혼하게 되죠.

1946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에바는 남편의 유세에 동행해요. 열정적인 그녀의 연설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에바의 인기 덕에 후안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말도 나올 정도였죠.

에바는 정부 내에서 공식적인 직책을 맡지는 않았지만 노동자와 빈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어요. 외국 자본을 몰아내고, 기간 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급진적인 정책도 있었어요.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노동입법 추진, 노동자 생활수준 향상, 여성 노동자의 임금 인상 및 여성의 지위 개선 등 획기적인 정책을 내놨죠.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이라는 비판도 들었어요.

페론 정권의 복지 확대는 이후 후속 정권에서도 이어졌고 많은 문제를 낳았어요. 대중의 인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일 뿐 나라의 재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죠.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반에는 손꼽히는 부국이었지만, 지금은 추락한 나라가 됐어요.

약자를 위한 복지 정책 확대로 칭송을 받았지만, 경제를 망친 장본인이라는 평가도 많아요. 하지만 노동자와 여성, 빈민들은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 많은 [신문은 선생님] 콘텐츠를 보려면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