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 출간된 ’93년'은 ‘레미제라블’이나 ‘노트르담 드 파리’를 쓴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마지막 장편 소설입니다. 집필 준비 기간만 무려 10년이 걸렸다고 해요.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신념과 인간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혁명에 대한 위고 스스로의 결론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죠.

1874년 출간된 '93년' 초판 표지. /위키피디아

1789년 5월 프랑스 대혁명의 서막이 올랐지만, 왕당파와 공화파의 타협으로 1792년 9월까진 입헌군주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주변 군주국들의 위협과 공화파 내부의 갈등 등으로 1792년 9월 입헌군주제가 막을 내리고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공화제가 시작돼요. 그해 12월 혁명의회는 루이 16세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1793년이 밝자마자 루이 16세의 사형이 집행되죠. 이후 혁명의회 내 온건파와 급진파의 충돌이 심해졌어요. 이 무렵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방데라는 곳에서 왕당파의 사주를 받은 농민들이 내란을 일으켜요. 혁명의회는 군대를 파견하고, 왕당파 반군과 전쟁이 벌어집니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졌던 내란 중 가장 치열했던 이 전투를 ‘방데 내전’이라고 불러요.

93년은 방데 내전을 배경으로 랑트낙과 고뱅, 시무르댕의 이야기를 그려내요. 랑트낙 후작은 브르타뉴 지방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으로, 방데 반군의 총사령관이었어요. 그런데 반군을 섬멸하라고 파리 혁명의회가 파견한 공화파 군대의 사령관은 랑트낙 후작의 종손자인 고뱅이었어요. 랑트낙은 방데 지역의 한 고성 ‘라 투르그’에 주둔하며 공화파 군대와 전투를 벌입니다. 이 ‘라 투르그’는 고뱅이 시무르댕에게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곳이었습니다. 공화파였던 시무르댕은 과거 사제이자 고뱅 가문의 가정교사로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이에요. 고뱅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기도 했어요. 랑트낙과도 너무나 잘 아는 사이였지요.

치열한 전투 끝에 수세에 몰린 왕당파는 어린아이 셋을 인질로 잡아 두다가, 비밀 문을 이용해 몰래 라 투르그를 탈출하는 데 성공해요. 하지만 성에 불이 붙고 갇혀 있던 아이들이 위기에 처하자 랑트낙은 성으로 되돌아와 아이들을 구출하고 공화파에 붙잡혀요.

시무르댕은 포로가 된 랑트낙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사면을 해서도 안 되고, 처형을 유예해서도 안 된다’는 혁명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지요. 하지만 고뱅은 랑트낙을 냉혹한 전쟁터에서 세 아이를 위해 불구덩이에 몸을 던져 희생한 훌륭한 인격자라고 생각해요. 고민하던 고뱅은 랑트낙의 탈옥을 도와요. 그렇지만 신념에 충실한 시무르댕은 아들처럼 키운 고뱅을 처형합니다. 이후 시무르댕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93년의 주인공들은 과연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격동의 시대가 아니었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빅토르 위고는 그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혁명과 인간의 본질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절절하게 그려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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