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25가지 질병으로 읽는 세계사

정승규 지음 l 출판사 반니 l 가격 1만6500원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어요. 질병은 전쟁과 기근만큼 인류를 위협하는 큰 재앙이지요. 과거 아즈텍 문명은 천연두 바이러스 때문에 멸망했고, 중세 유럽인은 콜레라와 흑사병으로 수많은 목숨을 잃었어요.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1차 세계대전 전사자보다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갔답니다.

이 책은 ‘질병’과 ‘약’을 중심으로 25가지 흥미로운 세계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요. 정적을 죽이기 위해 사용한 독약, 신비한 약으로 믿고 사용했지만 실은 독극물이던 약물, 베토벤·뭉크·케네디·덩샤오핑 등 난치병·불치병과 싸운 영웅들의 이야기를 소개해요.

오늘날 수은이 맹독성 물질이라는 건 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독성에 대한 지식이 없던 옛 중국에선 의학서 ‘신농본초경’에서 수은을 질병을 고치는 약으로 분류했대요. 당태종 이세민은 불로장생을 꿈꾸며 ‘단약’이라는 걸 매일 먹었는데, 수은 중독으로 급사했어요. 후에 그가 먹은 ‘단약’의 주성분이 수은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이 청력을 잃은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어요. 발진티푸스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설과 매독으로 신경 장애가 생겼다는 설이 유력했죠. 그런데 1999년 시카고의 한 연구소에서 베토벤이 남긴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정상인의 100배에 달하는 60ppm(100만분의 1)의 납이 검출됐어요. 베토벤은 다뉴브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즐겨 먹었는데, 당시 다뉴브강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다량의 중금속이 함유된 오염수를 배출했지요. 또 베토벤은 평소 납유리로 만든 유리하모니카도 즐겨 불었다고 해요. 그가 만성 복통과 소화불량·우울증을 앓았던 것도 모두 납중독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다산 정약용은 어릴 때 홍역을 앓았어요. 당대 제일의 홍역 전문의 이헌길은 1만명에 달하는 어린 생명을 구했는데, 그중에는 어린 정약용도 있었어요. 이헌길은 ‘마진방’(1775)이란 책에서 홍역 치료 비법을 공개했답니다. ‘마진’은 홍역에 걸렸을 때 온몸에 올라오는 붉은 반점이 깨알보다도 더 작은 마의 씨앗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전염병으로 다섯 자식을 잃고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 정약용은 ‘마과회통’(1798)을 집필해 홍역과 천연두 치료법을 자세히 정리했어요.

위대한 영웅이나 세계를 뒤흔든 악인, 특별하든 평범하든 질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어요. 질병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신과 신비에 기대지 말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의학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