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유재일

지난달 스웨덴 웁살라대 연구진이 중생대 공룡형류(공룡과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공룡 사촌)의 분변(똥) 화석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어요. 화석 속에는 배설물 주인이 당시 먹었던 곤충과 녹조류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화석은 과거에 살았던 생물과 당시 환경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예요. 보통 생물 뼈나 발자국 화석처럼 신체 일부와 생활 흔적이 화석이 되죠. 그런데 생물의 분변도 화석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똥 화석(Coprolite)을 분석하면 과거 생물이 어떤 것을 먹고 살았는지, 어떤 환경에 살았는지, 당시 또 어떤 다른 생물이 있었는지 등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어요.

◇중생대 똥 화석이 알려준 것

스웨덴 연구팀이 분석한 똥 주인은 약 2억3000만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형류 ‘실레사우루스’였어요. 트라이아스기는 중생대 초기인데, 바로 직전인 고생대 말 페름기와 트라이아스기 초기에는 지구 역사상 최대의 ‘대멸종’이 일어납니다. 지구상 생물종의 약 80~96%가 사라진 엄청난 사건이었죠.

그런 대멸종에도 살아남아 진화한 대표적인 생물 중 하나가 바로 ‘딱정벌레’예요. 딱정벌레는 현재 알려진 곤충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고 개체 수도 많은 생물인데, 원시 딱정벌레의 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연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실레사우루스의 똥 화석 안에서 더듬이부터 다리까지 온전하게 보존된 원시 딱정벌레가 발견된 거예요. 지금 있는 딱정벌레와는 다르며 멸종한 종이랍니다. 연구팀은 길이 17㎜, 직경 21㎜의 원통형 화석 조각을 X선으로 촬영해 겉으론 보이지 않는 화석 내부를 3차원으로 분석했어요. 그 결과 몸길이 1.4~1.7㎜ 크기의 딱정벌레와 그보다 큰 딱정벌레의 신체 일부로 보이는 조각 수십 개가 발견됐지요. 실레사우루스가 몸이 작은 딱정벌레는 그대로 삼켰고, 큰 딱정벌레는 씹어서 넘겼기 때문에 분해된 것으로 추정된대요.

똥 화석에선 딱정벌레뿐 아니라 녹조류도 함께 발견됐어요. 이를 바탕으로 실레사우루스가 습지나 물가에서 살았었고, 잡식생활을 했으며, 딱정벌레도 같은 환경에서 살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어요. 작은 똥 화석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정보가 참 많지요?

◇1000년 전 조상은 옥수수·메뚜기 먹었다

‘똥 화석’에는 주인의 생체 내부 정보가 담겨 있어요. 주인의 장에 살았던 미생물에 대한 정보까지 찾아낼 수 있어요.

지난 5월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이 미국 남서부와 남미 지역에서 발견한 약 1000년 전 고대 인간의 것으로 추정되는 분변 화석 8점을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어요. 이 화석은 기원후 0~1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됐어요.

보통 분변은 자연적으로 분해되어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연구 대상 화석들은 남미의 건조한 기후와 환경 덕분에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해요. 화석에서 유전정보를 찾기 위해 연구팀은 화석 1개당 1억번 이상 DNA 판독 과정을 실시했고, 그 결과 인간 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되는 181개의 유전체를 찾아냈어요. 분변에는 인간의 몸에서 유래한 유전정보뿐 아니라, 당시 인간이 먹었던 생물의 유전체가 함께 섞여 있고, 배출 이후 외부 미생물이 묻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인간 몸속에 있던 유전체만 골라내는 작업을 한 거예요. 그렇게 고대인의 장내 미생물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당시 사람들이 옥수수와 콩 등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했고, 일부 지역에선 선인장과 메뚜기도 먹었다는 걸 알아냈어요.

◇똥과 장내 미생물

인간의 몸에는 약 100조개의 미생물이 공생하고 있는데, 무게로 치면 1㎏이나 돼요. 그중에서도 대장이나 소장 등 장에 사는 미생물은 여러 가지 대사 작용과 면역에 큰 영향을 줘서 대장암·비만·당뇨 등 질병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번 1000년 전 조상의 똥 화석 연구에선 고대인의 장내 미생물 유전체가 현대인과 다르다는 게 밝혀졌어요. 고대인의 똥 화석에서 발견된 장내 미생물의 38%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종이었어요.

우선, 고대인에겐 정제되지 않은 복합탄수화물 분해와 관련된 유전자가 많았어요. 현대인들은 껍질을 벗겨낸 정제 곡물로 만든 빵, 파스타 등을 많이 먹지만, 1000년 전 사람들은 정제되지 않은 통곡물로 탄수화물을 섭취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미생물 유전자가 검출된 걸로 보여요. 또 고대인에겐 항생제 내성 관련 유전자도 현대인보다 적었는데 현대인들이 각종 항생제를 많이 섭취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대인에겐 장 내부 점액질을 분해하는 유전자도 현대인보다 적었어요. 점액질은 장 내부 벽을 보호해 건강하게 유지해주는 물질이에요. 옛사람에게 이걸 분해하는 유전자가 적었다는 건 점액질 부족으로 겪는 건강 문제도 적었다는 의미죠.

이런 고대인들의 장내 미생물은 현재로 치면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은 지역 사람들과 비슷하대요. 많은 현대인이 산업화로 식생활 등 삶이 크게 편리해졌지만, 동시에 일부 질병에 대한 면역은 잃은 셈이지요.

[나라마다 다른 장내 미생물]

지난달 한국인의 ‘장내 미생물 유전자 지도’가 최초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연세대 연구팀이 한국·일본·인도 등 아시아 3국 845명의 분변에 든 5414종의 장내 미생물을 분석해 유전자 지도를 만든 거예요. 연구 결과 한국인의 장내 미생물에는 식이섬유 관련 유전자가 많이 발견됐고, 일본인의 장내 미생물에선 해양 생물에서 얻은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효소 유전자가 많이 발견되는 등 각국 사람들의 식생활과 장내 미생물 구성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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