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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가위

용달 지음 l 출판사 책고래 l 가격 1만2000원

지각 대장 건이는 오늘도 지각이네요. 학교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져요. 건이는 학교 가는 것이 정말 싫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건이는 번뜩 자신이 마법의 가위를 가진 것을 떠올려요. 모든 것을 잘라낼 수 있는 가위예요. 이것으로는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자를 수 있어요. 우선 시계부터 잘라야겠어요. 그러면 자신을 지각 대장으로 만드는 시간을 멈출 수도 있겠죠?

건이는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교실 물건들도 싹둑싹둑 자릅니다. 학교의 계단은 커다란 미끄럼틀로 만들었어요. 시계도 신나는 놀이기구가 됐네요. 이제 학교는 거대한 놀이터가 되었어요. 건이는 쓱싹쓱싹 마법 가위로 순식간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네요.

이 그림책을 쓴 김용달 작가는 미술을 가르치며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했어요. 그래서인지 작가는 주인공 건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헤아립니다. 학교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건이를 전혀 말리려 하지 않아요. 오히려 학교라는 공간을 두고 최대한 즐겁게 상상해보라고 부추기죠. ‘마법 가위’는 작가가 주인공에게 선사한 선물이에요. 건이의 상상을 도와주기 위해서겠죠.

건이가 마법 가위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무채색의 세상은 조금씩 아름다운 색으로 칠해지며, 책장을 뒤로 넘길 때마다 그림이 밝아져요. 아이가 즐거운 상상을 통해 생명력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표현한 거예요. 이런 구성 덕분에 어린 독자도 즐거운 상상의 힘을 함께 느낄 수 있어요.

주인공 건이가 가위로 새로 만든 학교처럼 세상이 즐거운 일들로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것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똑같아요. 다만 어른이 되면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을 뿐이죠. 어른이 되면 재미있는 시간만 계속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거든요.

아이들에겐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야만 하는 학교 수업이 있고, 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오늘 중에 꼭 마쳐야 하는 숙제도 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을 잘 견디고 나면 더 신나잖아요?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더 즐겁고, 숙제를 마치고 노는 것이 더 신나는 것처럼요.

그러니까 ‘재미있는 시간’은 ‘재미없는 시간’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재미있는 시간’이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을 잘 참고 견뎠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선물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아이들은 보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예요. 주인공 건이는 오늘 신나는 하루를 만들었지만, 언젠가는 그 마법의 가위를 가지고 보람이라는 것을 오려서 가슴에 붙이게 될 거예요. 보람은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것 중의 하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