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분들의 탄소 발자국 측정을 위한 설문조사입니다.’
연극 ‘기후비상사태:리허설’을 보러 가기 전, 이런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어요. 출발지에서 공연장까지 걸어서 가는지, 혹은 자전거나 버스·지하철 등을 이용하는지 고르고, 교통수단별로 얼마나 걸리는지도 선택해야 해요.
이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이 뭔지 알려주기 위한 거예요. 흙이 잔뜩 묻은 신발로 깨끗한 카펫이나 눈을 밟으면 선명한 발자국이 남게 되죠. 마찬가지로 인간도 지구에 ‘오염 물질’로 발자국을 남겨요. 탄소 발자국은 인간 활동이나 상품 생산, 소비 과정에서 생기는 온실가스 발생량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한 지표를 의미해요.
최근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며 공연계에도 환경과 기후변화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작품이 속속 소개되고 있어요. 명동예술극장이 다음 달 5일까지 선보이는 연극 ‘기후비상사태:리허설’도 그중 하나입니다. 작품 제작부터 관람까지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을 산정해서 공연계에서도 탄소 발자국 절감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기후 위기는 나의 문제
이 연극은 지구의 수명을 24시간으로 가정했을 때, 마지막 1분(60초)이 채 남지 않은 위기 상황을 다뤄요. 실제 강화도에 살고 있는 연출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죠. 극의 주인공인 ‘작가’ 역시 섬에 살며 기후 위기에 대한 희곡을 쓰고 있거든요.
극은 완전한 ‘암전’(暗轉) 상태에서 시작해요. 극에서 무대를 어둡게 만든 뒤 장면을 바꾸는 것을 암전이라고 하는데요. 인류가 직면한 기후 위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거예요.
작품에는 등장인물 11명이 등장하는데요. 이들은 기후 위기를 나의 위기로 생각하지 못하는 인물들이에요. 우리는 기후 위기를 나의 일상과는 먼 이야기로 생각하고 살기 쉽지요. 지구 온도가 1도 올라가도 당장 내 삶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 연극은 기후 위기 문제의 최종 종착점이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공감하며, 결과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실천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구에 좋은 사람일까
우리가 지구에 어떤 존재인지, ‘좋은 사람’이 맞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연극도 있어요. ‘렁스’(Lungs·폐)라는 작품인데요. 2011년 워싱턴에서 초연한 뒤 미국·영국·스위스 등 세계 각국에서 꾸준히 공연됐고, 지난해 국내에서 초연됐어요. ‘폐’라는 제목이 무척 의미심장하죠. 폐는 우리 몸에서 호흡을 담당하는 필수적인 장기예요. 공기의 들숨과 날숨을 통해 산소를 얻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 우리는 숨을 쉬죠. 인간에게 폐가 중요한 만큼, 지구도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제목이에요.
이 작품은 영국 작가 덩컨 맥밀런의 대표작으로 2인극이에요. 지구 환경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여자와 음악을 하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둘은 부부입니다. 어느 날, 이케아에서 쇼핑을 하던 남자가 문득 이렇게 말해요. “우리 아이 갖자.”
그런데 환경학을 공부하는 박사인 여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한 명의 인간은 1만t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비행으로 치면 런던에서 뉴욕까지 몇 번을 왕복해야 그만큼의 탄소량이 발생할지 계산해봤어. 2550번, 내가 7년간 매일 같이 뉴욕을 왔다 갔다 해도 아이를 갖는 것보다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이 적어. 1만t이야. 이산화탄소가 1만t. 에펠탑의 무게야. 내가 에펠탑을 낳는 거라고!”
이 작품은 기후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루기도 합니다. 어떻게 남녀가 사랑하고, 이야기하고, 나이 들고, 서로를 이해하는지를 따뜻하게 보여주는 연극이죠. 출산을 고민하며 아이를 낳는 일이 과연 이 지구를 위해 좋은 일인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대화를 끊임없이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지구를 위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 연극은 기후 위기라는 거대하고 풀지 못할 것 같은 문제를 내 삶과 연결시켜 아주 가깝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플라스틱 페트병 라벨을 뜯어서 꼼꼼하게 재활용을 하고,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자전거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고, 환경보호를 위해 앞장서는 공정 무역 제품을 구매하면서 스스로 “좋은 사람이야”라며 안심을 하죠. 하지만 종종 급하다는 이유로 분리배출 없이 쓰레기통에 플라스틱을 던져버리고, 비닐봉지를 쓰고, 이동하지 않는데도 음악을 듣겠다며 자동차 시동을 켜 둬요. 이 역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연 지구에 좋은 사람일까요?
[기후 위기 용어들]
‘인류세’(人類世)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켜 자연적으로 생성된 지질 연대와 구분하기 위해 논의되는 명칭이에요. 1950년대 이뤄진 핵실험과 플라스틱 등 인공물의 증가, 이산화탄소와 메탄 농도의 급증, 대기·수질·토양 오염 증가, 지구 온난화의 급격한 확대 등으로 인해 특정 기간에 여러 생물종이 급격하게 멸종하는 등의 현상이 발생한 새로운 지질 연대를 의미하지요.
‘탄소 중립’이라는 말은 개인이나 회사·단체가 배출한 만큼의 온실가스를 다시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돌려놓는 것을 의미해요. 기후 위기를 감지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으로 거론되고 있답니다. ‘기후 우울증’이라는 용어도 있어요. 기후 위기로 미래가 사라졌다는 인식이 슬픔과 상실감, 분노로 이어지는 심리 상태죠.
최여정·'이럴 때 연극’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