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코린 로브라 비탈리 지음 l 마리옹 뒤발 그림 l 이하나 옮김 l 출판사 그림책공작소 l 가격 1만4000원

프랑스의 알프스 언덕 어디쯤에서 살고 있다는 그림책 작가 코린 로브라 비탈리. 그는 어린 시절부터 수박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고 해요.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안톤 체호프(1860~1904)가 남긴 말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체호프는 형제에게 “너는 네 삶이 도둑맞은 수박처럼 행동해야 해”라고 말했다고 해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작가는 체호프의 이 말을 들은 후부터 줄곧 이 문장의 의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고 싶었나 봐요.

이 책 주인공 앙통은 수박을 키우는 농부예요. 그는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수박을 가꿔요. 마치 수박처럼 진한 초록색의 돌로 바둑판 위를 가득 채운 것처럼 앙통의 넓디넓은 수박밭은 말 그대로 완벽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에요. 밭 한가운데에서 수박 한 통이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도둑맞은 거예요. 앙통은 깊은 상실감에 빠지고 말아요. 많은 수박 중 단 한 통일 뿐이지만, 수박을 키우느라 모든 노력과 정성을 쏟았던 앙통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어요. 그의 머릿속에는 온종일 잃어버린 수박 생각만 떠올라요. 수박이 있던 빈자리를 보는 것은 몹시 불편했지요.

악몽까지 꾼 앙통은 굳은 결심을 해요. 두 번 다시 수박을 도둑맞지 않겠다고요. 앙통은 수박밭 한가운데에 의자를 가지고 가서는 밤을 새우기로 해요. 하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가네요.

앙통은 이런 행동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까지 해서 수박을 단 한 통도 잃지 않겠다는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일까요? 앙통이 지쳐 잠든 사이 근처의 길고양이들이 나타났어요. 고양이들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앙통의 농기구들을 넘어뜨렸고, 자루에 담겨 있던 씨앗도 꺼내 공중에 뿌렸어요. 날뛰는 고양이 때문에 수박들은 공중으로 솟구치기도 하다가, 바닥을 굴러다니기도 했어요. 앙통의 수박밭은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듯 모든 것이 어질러졌어요.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앙통은 엉망이 된 수박밭을 바라보아요. 그런데 순간 아주 희한한 일이 일어납니다. 앙통의 눈에 수박이 더 싱싱해 보였던 거예요. 그리고 정말 놀라운 일도 일어나죠. 도둑맞았던 그 수박의 빈자리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거든요. 책의 마지막은 이런 문장으로 끝나요. “앙통은 이제 허전하거나 슬프지 않다. 수박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하니까.”

주인공 앙통이 느끼는 끝없는 불안과 마음의 고통은 ‘아무것도 잃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에 생긴 듯하네요. 어쩌면 모든 것을 틀에 맞게 계획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더욱 완벽한 모습이 아닐까요. ‘완벽’이란 것에 대해 많은 질문이 떠오르게 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