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부지방을 강타한 호우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당했어요. 비가 내릴 때 양말이 젖지 않도록 장화를 신기도 하는데요. 장화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장화의 기원이 된 신발을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은 영국의 초대 웰링턴 공작(귀족 작위)인 아서 웰즐리(1814~1852)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영국군은 단화 형태 가죽 구두를 전투화로 신고 있었는데요. 이 신발에는 진흙이나 이물질이 들어가기 쉬웠고, 전투 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서 군인들의 정강이를 보호해주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당시 프로이센 군대에서 신었던 ‘헤시안 부츠’(Hessian Boots)가 영국군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영국 장교들은 부츠에 화려한 술 장식이나 박음질을 하며 멋을 내기 시작했어요. 부츠의 목은 점점 길어져 무릎 위를 덮게 됐고, 실용성과는 거리가 있었지요.
이에 웰링턴 공작은 구두 제조 업자인 조지 하비에게 이 부츠의 형태를 영국군에 맞게 개량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이에 정강이를 반쯤 덮을 수 있고, 각종 장식이 제거된 부츠가 개발됐지요. 이것을 ‘웰링턴 부츠’(Wellington boots)라고 합니다.
웰링턴 부츠가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고무장화 형태로 바뀌는 데에는 영국 출신의 기업가 하이럼 허친슨(1808~1869)의 영향이 컸습니다. 허친슨은 프랑스로 건너가 고무와 관련한 각종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세웠어요. 그리고는 소가죽으로 만들어지던 웰링턴 부츠를 고무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어요. 당시 프랑스의 노동 계층은 비가 올 때 나막신을 신고 일을 했는데, 고무장화가 나오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요.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사업가 헨리 노리스(1813~1881)가 고무장화 산업에 뛰어들었고, 고무장화는 험한 작업 가운데 다리를 지켜주는 신발로 주목받았습니다.
고무장화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적극 활용됐어요. 당시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땅을 파서 만든 참호(塹壕)에 있던 군인들은 비가 내리는 날이면 오랜 시간 물이 들어찬 구덩이에서 생활해야 했어요. 이 때문에 ‘참호족’(침수된 참호에서 오랜 시간 지내면서 발에 생기는 괴사·감각이상 등 질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에 영국군에서는 고무로 만든 장화를 군인에게 보급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보급된 고무장화를 ‘헌터 부츠’(Hunter boots)라고 부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