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걸려 있는 명화(名畫)는 세상에 단 한 점밖에 없는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가령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를 예로 들면, 그림 이미지는 휴대전화 검색으로도 볼 수 있지만, 원본을 보려면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야 하죠. 유명한 미술가가 붓으로 그린 유일한 회화 작품은 인터넷상 이미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가치가 있습니다. ‘모나리자’는 판매용으로 내놓지도 않지만, 만일 값어치를 매긴다면 수천억원에서 최고 40조원일 거라고 해요.
살아 있는 미술가 작품 중에서는 몇 년 전 영국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예술가의 초상’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로 비싼 약 1019억원에 낙찰됐습니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7월 2일까지 ‘데이비드 호크니와 브리티시 팝 아트’ 전시가 열려요. 이 전시에서는 호크니의 판화와 포토콜라주(사진을 오려 붙여서 화면을 구성하는 것) 작업이 소개됩니다. 그 외에도 1960~1970년대 영국을 풍미한 음반 표지나 포스터 등 그 시대 젊은이들의 눈길을 끈 각종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어요.
◇미국 뉴욕보다 영국에서 먼저 싹터
값진 보물처럼 영구적으로 미술관에 전시하는 단 하나밖에 없는 회화 작품이 아닌, 무수히 많이 찍어내 일반 소비자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상업적 이미지가 새로운 미술 경향으로 떠오른 시기가 있어요. 바로 1960년대 대중문화를 흡수하면서 등장한 팝 아트(pop art)입니다. 일반적으로 팝 아트는 1960년대 초 미국 뉴욕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움직임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조금 앞선 1950년대 말 영국에서 싹을 틔웠어요. 호크니는 영국 팝 아트를 이끈 구성원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팝 아트의 경쾌한 감수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화가라고 할 수 있지요.
평소 수영장 그림을 즐겨 그린 호크니는 ‘수영장 화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요. 덕분에 올림픽 경기가 열릴 때면 수영 선수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를 그려 달라는 의뢰를 여러 번 받았다고 합니다. 한 예로 <작품1>의 1972년 뮌헨 올림픽 포스터를 보세요. 호크니는 수직으로 물에 뛰어드는 수영 선수의 상체를 중심에 놓고, 그 배경으로 단순한 선과 색감이 다양한 파란색을 써서 울렁이는 물결을 멋지게 표현했어요.
<작품2>는 호크니가 1986년 전시회 포스터로 쓴 포토콜라주 이미지입니다. 여러 시점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이어 붙여서 시선이 한 군데 고정되지 않은 풍경을 만들어 낸 것이죠.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는 캘리포니아주 138번 국도 교차로의 땡볕 아래서 8일 동안 사진을 거의 800장 찍었어요. 그러니까 이 그림 한 장에는 각각 방향이 다른 시선 800개가 숨어 있는 셈이랍니다.
◇전쟁 후 사회의 요구가 반영된 팝 아트
2차 세계 대전을 겪고 난 영국의 젊은이들은 전쟁이 끝나자 암울하고 억눌려 있던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어요. 그들은 잡지와 만화책을 사고, 영화나 레슬링 경기를 보러 다니는가 하면, 신나게 트위스트 춤을 추며 평화로워진 시대를 만끽했습니다.
그러니 이전 시대의 진지하고 심오하고 지적인 그림들은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지 않았어요. 때마침 미술가를 포함해 영화인, 건축인, 광고인, 그리고 디자이너까지 모인 한 세미나에서 이제는 미술도 바뀔 때가 됐다는 의견이 제기됐어요. 이렇게 미술이 대중적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각을 바탕으로 영국에서는 새로운 유행이 나타났어요. 무거운 주제보다는 발랄하고 일시적인 감각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었죠. 이것이 영국 팝 아트의 출발점인데, 리처드 해밀턴과 에두아르도 파올로치가 대표적 미술가입니다.
<작품3>은 리처드 해밀턴의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다르고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라는 포토콜라주 그림입니다. 해밀턴은 1956년 화이트 채플 아트 갤러리에서 열린 ‘이것이 내일이다’라는 전시에 참가했어요. 이 전시는 영국 팝 아트를 모두의 앞에 처음으로 공개한 유명한 전시였죠. 해밀턴의 그림이 바로 이 전시 포스터로 쓰였어요. 그림에선 대중문화와 현대 기술에 대한 관심을 집 안에 있는 물건으로 표현했습니다. 지금은 구식으로 느껴지지만, 1950년대 당시에는 최신식으로 여겨졌을 녹음기와 진공청소기 같은 가전제품이 보여요. 아름다운 신체를 과시하는 남녀 주인공도 등장하는데, 사람들이 골치 아픈 사회문제보다는 자신의 행복에 더 집중하게 됐음을 암시합니다.
<작품4>는 ‘많은 그림, 많은 재미’라는 제목의 에두아르도 파올로치가 만든 판화예요. 1950년대 후반부터 매력적인 이미지가 곳곳에 넘쳐났는데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잡지나 텔레비전 같은 미디어였습니다. 이 그림은 미디어에서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수많은 흥미진진한 이미지 속에서 살게 된 현대인의 삶을 풍자하고 있어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을 지닌 제목은 정말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과연 이토록 많은 이미지를 다 소화할 수 있겠느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랍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