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킹 지음 l 최파일 옮김 l 출판사 책과함께 l 가격 3만5000원

오늘은 ‘스승의 날’이에요.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날이지요. ‘스승’은 자신을 가르쳐 이끌어 주는 사람을 뜻하는데요, 사람은 아니지만 ‘책’은 우리를 가르치고 세상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넓혀 준다는 점에서 마치 스승과 같다고 볼 수 있어요. 오늘은 우리 모두의 스승인 책을 다룬 책을 소개해요.

이 책은 15세기 유럽에서 책이 어떻게 필사본에서 인쇄본으로 바뀌어 갔는지 그 역사를 담았어요. 피렌체의 서점과 서적 판매인들을 중심으로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식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졌는지를 다룹니다.

이 책에는 ‘인류의 스승’이라 부를 만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책을 만들어 피렌체에 지식을 전파해 르네상스(유럽 문명사에서 14~16세기 일어난 문예 부흥)라는 지적 발전에 기여한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입니다. 15세기 실존 인물인 베스파시아노는 르네상스 피렌체의 저명한 서적상이었어요. 그는 작가와 학자, 독자를 연결하며 책의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교황이나 왕, 귀족 같은 권력자를 포함해 다양한 고객에게 필사본을 공급했는데, 모든 책을 손으로 베껴 써서 만들던 그 시절에 무려 1000권이 넘는 책을 제작, 판매했어요. 그의 서점은 인문주의자들의 토론과 만남의 장이었죠.

이 책을 옮긴 이는 이렇게 썼어요. ‘책 사냥꾼들은 전쟁의 불길 속에 사라질 위험에 처한 희귀 필사본을 구해내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판다. 번역가들은 좋은 소리를 듣기는커녕 오역 지적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고심해 가며 고전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옮긴다. 필경사(글씨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깃펜을 움직이며 보기 좋은 서체로 필사를 한다. 채식사와 세밀화가는 정성스레 금박을 붙이고 장식 그림을 그린다. 이들의 노고의 산물이 한데 합쳐져 책이 탄생하고 학문 공동체 전체가 그 지식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이 모든 것이 베스파시아노가 한 일이에요.

하지만 현재 피렌체에 베스파시아노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해요. 산타 크로체 성당 작은 명판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 것이 전부래요. 그의 서점은 피자 가게가 됐다고 해요. 베스파시아노가 만든 필사본이 유럽 전역에 널리 퍼진 것에 비하면, 그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거지요. 1788년 출간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각주에 ‘피렌체의 베스파시안’이란 이름이 잠깐 등장할 뿐이에요. 이렇게 각주에 등장한 인물을 중심으로 책과 중세의 역사를 엮어낸 게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이에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책이 그저 단순한 정보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소중한 유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