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청 글·무르르 그림 | 출판사 달그림 | 가격 1만6000원

“사고가 났어. 더 이상 엄마를 볼 수 없대.” 책을 펼치자마자 충격적인 문장이 보여요. 유청 작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에요.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고 마음 아파하던 자신의 반 아이를 생각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해요. 책장을 넘기자 시커멓게 어두운 집 안이 나타나요. 위층 방에는 맥없이 돌아누운 아빠가 있어요. 계단 밑에는 무릎을 감싸 안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작은 소녀가 보이네요. ‘사진 속엔 아직 엄마가 있는데, 텅 빈 것 같은 집엔 아빠와 나뿐이야’ ‘아침을 알리는 음악 소리도, 아빠의 면도기 소리도 들리지 않아.’ 소녀는 생각해요. ‘고장 난 인형을 들고 아빠에게 갈 자신이 없어. 아빠는 아빠 마음을 고치기도 벅찰 테니까.’

이제 소녀에게 남아 있는 엄마의 흔적은 얼마 전 엄마가 발라 준 매니큐어뿐이에요. 소녀는 좋아하던 모래 놀이도, 피아노 연주도 더는 하지 않아요. 매니큐어가 지워지면 안 되니까요. 소녀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손톱을 가만히 쳐다봐요. 그러곤 엄마에게 말을 걸어보네요. “항상 옆에서 지켜준다고 해 놓고.... 엄마, 왜 약속 안 지켜?”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오늘도 캄캄한 방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요. 그런데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오네요. 아빠는 마당에서 꽃을 한 다발 꺾어왔어요. 지난봄 엄마와 함께 심었던 봉숭아예요. 아빠는 “봉숭아 물을 들이면 엄마가 항상 함께 있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며 소녀의 손톱에 물을 들여줘요. 소녀는 손톱이 영원히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날부터 아빠에게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슬픔으로 가득 차 면도도 하지 않고 늘 누워만 있었는데 말이에요.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든 아버지 머리맡에 컴퓨터가 켜져 있어요. 모니터 속 검색 창엔 ‘머리 예쁘게 묶는 법’이 떠 있어요. 고장 났던 집 안의 물건들이 하나둘 제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어요. 소녀는 생각해요. ‘아픈 마음도 다시 고칠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손톱이 많이 자랐어요. 손톱을 깎아야겠다는 아빠의 말에 소녀는 눈물이 납니다. “싫어! 엄마가 점점 사라지잖아.” 소녀는 온 힘을 다해 울었어요. 울음이 잦아들자,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말해요. “손톱이 사라진다고 마음도 사라지는 건 아니야.”

아빠가 소녀의 머리를 묶어주는 솜씨가 이제 꽤 봐줄 만해졌어요. 아빠는 수염도 깨끗이 깎았어요. 소녀는 피아노 연습을 시작해요. 소녀의 집에 다시 음악이 흐르고 있네요. 어느새 소녀의 키는 훌쩍 자랐고요. 가장 소중한 것을 마음에 간직하는 법을 배우면서, 끝내 상실의 아픔을 극복해내는 주인공 소녀의 내면적 성장을 매우 감동적으로 담은 책입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