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 공연 장면. ‘시카고’는 1924년 미국 시카고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어요. /신시컴퍼니

미국 도시 이름을 작품 제목으로 한 뮤지컬 2편이 최근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바로 뮤지컬 ‘시카고’(5월 27일부터 8월 6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와 ‘멤피스’(7월 20일부터 10월 2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입니다. 이 중 서울 공연을 막 끝낸 뮤지컬 ‘시카고’는 부산(8월 11일부터 20일까지, 부산 남구 드림씨어터)과 대구(8월 25일부터 9월 3일까지, 대구 달서구 계명아트센터)로 내려갑니다.

‘인종의 용광로’ 배경 삼은 뮤지컬 ‘시카고’

‘윈디 시티(windy city)’라 불리는 시카고는 근처 미시간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이런 별명이 생겼어요. 호수 옆 늪지대 황무지에 불과했던 시카고는 5대호(湖)와 뉴욕 허드슨강을 연결하는 이리운하가 완공되고 북동부와 중서부를 연결하는 철도가 생기며 주요 산업 거점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던 중 1871년 시카고에 대화재가 일어나요. 도시가 전소될 정도로 대참사였지만, 이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아름다운 건축물을 새로 지었습니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이끄는 건축가 그룹 ‘시카고파’가 설계한 아름다운 건축물은 시카고를 ‘건축의 도시’로도 알려지게 했지요.

시카고는 이주 노동자들이 가장 정착하고 싶은 도시이자 실제로 많은 유럽 이주민이 사는 도시였어요. 하지만 밀려드는 이민자들은 실업과 빈곤을 겪고, 이들은 유럽에서 경험한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전파하며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해요. 이런 배경 속에서 시카고는 미국 노동운동의 메카로 알려지기 시작하죠. 이주 노동자들의 비참한 노동 현장은 퓰리처상 수상 작가 업턴 싱클레어의 ‘정글’이라는 소설로 알려져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어요.

뮤지컬 ‘시카고’ 공연 장면. ‘시카고’는 1924년 미국 시카고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어요. /신시컴퍼니

여러 인종이 섞인 ‘인종의 용광로’였던 시카고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도시로 성장하는 대신, 흑백(黑白) 갈등으로 신음합니다. 남부처럼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짐 크로법(Jim Crow Law)은 없었지만, 흑인에 대한 모욕이나 폭력적인 위협은 미국 전역 어디에나 뿌리 깊게 존재했죠. 그러다 1919년 7월 호숫가에서 물놀이를 하던 17살 흑인 소년 유진 윌리엄스가 백인이 던진 돌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는 시카고 인종 폭동으로 번지며 사망자 38명이라는 큰 피해를 냈지요.

1975년 초연된 뮤지컬 ‘시카고’는 이런 도시의 역사를 배경으로 1924년 시카고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다뤘습니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두 여성의 재판을 취재하던 ‘시카고 트리뷴’ 신문기자이자 극작가 모린 댈러스 왓킨스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이에요. ‘역사상 최장수 미국 뮤지컬’이라는 기록을 보유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이지요. 192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재즈 음악과 안무가 밥 포시의 독창적인 춤이 어우러진 ‘시카고’는 ‘쇼 뮤지컬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영화로도 제작돼 200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 초연 이후 20여 년간 최정원·남경주·박칼린·아이비·최재림 등 유명 배우들이 캐스팅돼 화제가 됐어요. 감옥에 수감된 여성들은 다양한 인종으로 표현되는데, 시카고의 오랜 이주민 역사를 이해하면 공연을 더욱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겠지요.

백인 사회에 퍼진 흑인 음악 다룬 ‘멤피스’

테네시주(州) 멤피스의 역사는 기원전 1만년쯤 이 지역에 흐르는 미시시피강에 자리 잡은 인디언 원주민 문화가 이어지면서 시작됐어요. 1540년쯤 스페인 탐험가 에르난도 데 소토가 이 지역을 탐험하면서 유럽 문화가 전파되기 시작했죠. 북아프리카 나일강에 있는 이집트 고대 수도 멤피스에서 이름을 땄어요.

뮤지컬 ‘멤피스’ 공연 장면. ‘멤피스’는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라디오 디제이 휴이와 흑인 클럽에서 노래하는 가수 펠리샤가 주인공이에요. /쇼노트

멤피스는 넓은 남부 목화밭을 배경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노예 노동에 의존하며 면화 무역의 주요 중심지로 빠르게 발전했죠. 주요 노예 시장이 있었던 멤피스는 인구 4분의 1이 노예일 정도로 노예가 많았어요. 백인 농장주와 노예 신분인 흑인 노동자 간 갈등으로 악명 높은 흑백 갈등의 진원이기도 하죠.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된 곳 역시 멤피스입니다. 이런 아픈 역사 속에서도 멤피스는 음악이 꽃피는 도시로 유명했어요. 이곳 음악이 라디오를 통해 전파되면서 멤피스는 미국 남부의 정체성을 알리는 문화적 기원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20세기 초부터 멤피스는 가스펠, 블루스, 재즈, 솔, 리듬 앤드 블루스 장르 등 혁신적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으로 유명했는데, 많은 유명 블루스 뮤지션이 이곳 출신이에요. 뮤지컬 ‘멤피스’는 흑인들의 블루스 음악이 인종 갈등을 넘나드는 화해의 매개가 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흑인 음악을 백인 사회에 널리 알린 전설적인 인물, 백인 디제이(DJ) 듀이 필립스의 실화를 다뤘어요. 듀이는 백인 방송국에서 흑인 음악을 송출했습니다.

‘멤피스’는 2010년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음악상, 각본상,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 4개 부문을 휩쓸고, 2015년 로런스 올리비에 어워즈 최우수 안무상과 음향상을 받는 등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영혼의 음악 ‘로큰롤’을 전파해 세상을 바꾸고픈 라디오 DJ 휴이(듀이의 극중 이름)와 뛰어난 재능으로 흑인 클럽에서 노래하는 가수 펠리샤의 꿈과 사랑이 아름다운 뮤지컬 곡과 함께 어우러집니다.

☞짐 크로법(Jim Crow laws)

짐 크로법은 공공시설에서 백인과 유색인종을 분리하도록 하는 미국의 법으로, 1876~1965년 시행됐어요. 1830년대 미국 코미디 뮤지컬에서 백인 배우가 흑인을 희화화하는 분장을 하고 연기한 흑인 캐릭터 이름에서 유래했죠. 100년 가까이 시행된 이 법은 1954년 공립학교에서 인종을 분리하는 차별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온 것을 계기로 폐지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