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 잊힌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삼은 창작 뮤지컬이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이끈 실존 인물이 주인공인 창작 뮤지컬 세 편이 공연 중이에요. ‘곤 투모로우’(22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 ‘제시의 일기’(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2년 2개월’(11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링크아트센터)입니다.

개혁 노래한 ‘곤 투모로우’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조선 말 혼란스러운 정세를 배경으로 합니다. 갑신정변이라는 근대적 개혁 운동을 일으킨 김옥균, 강대국 청과 일본 사이에서 힘없는 나라의 왕이었던 고종, 조선 최초 프랑스 유학생이자 김옥균을 암살한 실존 인물 홍종우를 모티브로 한 세 인물이 등장하죠.

갑신정변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곤 투모로우' 공연 장면. /PAGE1

1994년 발표된 오태석의 희곡 ‘도라지’를 원작으로 2016년 초연해 큰 호응을 얻었어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역사를 철저히 고증하는 대신 개혁의 희망을 노래하는 주제로 각색됐어요. 특히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가 뮤지컬에서는 가상의 인물 한정훈으로 등장해 김옥균 암살 후에도 대한민국의 독립과 개혁 의지를 이어가는 인물로 등장하죠.

갑신정변은 1884년 12월 4일 김옥균·박영효·서재필·서광범·홍영식 등 개화파가 청나라에 의존하는 수구 세력을 몰아내고 개화 정권을 수립하려 한 쿠데타예요. 외세로부터 독립을 꿈꾼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반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삼일천하로 끝난 실패한 혁명이었죠. 문벌과 신분제를 폐지하고 외국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던 갑신정변은 결국 김옥균이 암살되는 것으로 끝을 맺으며 비극적인 역사로 기록됩니다.

‘제시의 일기’, 육아일기에 임시정부 모습 담겨

뮤지컬 ‘제시의 일기’는 독립운동가 양우조·최선화 부부가 딸 제시를 키우며 1938년부터 1946년까지 8년간 써 내려간 육아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외손녀 김현주가 일기를 정리해 1999년 ‘제시의 일기’라는 책으로 출간했는데, 뮤지컬은 이를 원작으로 삼은 뒤 일부 각색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양우조·최선화 부부의 일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 '제시의 일기' 공연 장면. /네버엔딩플레이

비 오는 어느 날 밤, 육아일기의 주인공 제시가 부모님의 손때 묻은 일기장을 펼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어느새 성장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제시는 일기를 통해 자신보다 어린 나이였던 부모님의 첫 만남부터 자신의 출생, 그리고 힘겨운 독립운동 과정을 함께합니다. 젊은 시절 부모님과 어른이 된 제시가 시간을 거슬러 일기장 속 과거를 함께 여행하는 독특한 구조가 흥미롭습니다.

독립운동가 양우조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방직 학교를 졸업한 지식인이었어요. 내 손으로 동포들에게 옷을 입히자는 생각으로 공부를 마쳤지만, 조국 독립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 임시정부 생계부 차장 등을 맡으며 독립운동에 앞장섰죠. 그 공훈을 인정받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습니다. 부인 최선화 역시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신여성이었는데,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양우조를 찾아 혈혈단신으로 중국 망명길에 오릅니다.

두 사람은 백범 김구의 주례로 결혼하고, 딸 제시를 낳습니다. ‘제시의 일기’는 육아일기인 듯 보이지만, 중일전쟁 당시 임시정부가 일본의 공습을 피해 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을 거쳐 충칭으로 이동한 과정을 시기별로 정확히 알려주는 유일한 사료로서도 가치가 있어요.

박열의 투옥 기간 ‘22년 2개월’

뮤지컬 ‘22년 2개월’은 독립운동가 박열과 그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를 다룬 작품입니다. 영화 ‘박열’로도 잘 알려진 박열과 가네코의 사랑은 한 장의 흑백사진에 남아 있습니다. 바로 일왕 암살을 기도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대역 범죄자였던 두 사람의 옥중 사진입니다. 턱을 괴고 의자에 앉아 있는 박열과 그에게 기대 책을 읽는 가네코는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연인처럼 평안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뮤지컬은 독립운동가 박열의 활동보다도 가네코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죠.

독립운동가 박열의 삶을 다룬 뮤지컬 '22년 2개월' 공연 장면. /아떼오드

박열은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퇴학당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의열단과 흑우회, 불령사를 조직하며 독립운동에 나섭니다. 그러던 중 뮤지컬 배경이 되는 1923년 관동대지진 사건이 일어납니다. 일본은 천재지변을 조선인 탓으로 돌리며 무고한 조선인 6000여 명을 학살했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일본은 항일운동을 하던 조선 청년 박열을 배후로 지목하고, 가네코와 함께 1923년 10월 히로히토 왕세자 혼례식 때 암살을 기도했다는 죄목으로 체포합니다. 1926년 두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지만, 가네코는 1926년 7월 23일 형무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습니다.

박열은 22년 2개월을 복역한 후 우리나라가 해방되면서 미군에 의해 풀려나죠. 뮤지컬 제목 ‘22년 2개월’은 바로 박열의 투옥 기간을 의미합니다. 광복 이후 납북된 박열의 신상은 알려진 바 없지만, 가네코와의 사랑은 이렇게 뮤지컬로 제작돼 기억되고 있습니다.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