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피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자연재해 피해액은 2018년 약 1400억원에서 2020년 약 1조4000억원으로 급증했습니다. 재난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어요.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사회조사 결과’에서 우리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낀 국민은 3명 중 1명에 그쳤습니다. 가장 불안하게 느끼는 요인으로 ‘인재(人災)’를 꼽은 국민이 8.0%로, 2년 전보다 2.4%포인트 늘었어요. 여기서 인재는 자연재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안전 불감증’ 때문에 피해가 커진 경우를 말합니다.
지난 7월 15일 충북 청주 오송읍에 있는 궁평2지하차도가 집중 호우로 침수되면서 차량 17대가 물에 잠기고 14명이 사망했어요. 13~15일 충북 청주에는 비가 500㎜ 넘게 쏟아졌어요. 그런데 충청북도가 궁평2지하차도를 침수 위험이 크지 않은 ‘침수 위험 보통’으로 분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어요. 또 도로 확장 공사를 하기 위해 제방을 없앴는데, 비가 온다는 소식에 급히 만든 임시 제방이 무너지면서 강물이 지하차도를 덮친 것으로 밝혀졌죠. 하지만 지하차도를 아무도 차단하지 않아 인명 피해가 커졌어요.
당시 호우로 경북 예천 지역에선 산사태가 집중돼 10명 이상이 숨졌어요. 하지만 예천 지역 마을은 산사태 취약지구로 선정된 적이 없었고, 산사태 관련 대책도 미흡했어요. 또 사전 대피 경고도 없었죠. 두 재난 피해의 상당 부분이 인재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8월 8일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어요. 오랜 가뭄으로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 가운데 강풍까지 불면서 산불이 급격하게 번졌죠. 사망자는 97명, 실종자는 31명으로 집계됐어요. 사고에 앞서 마우이섬의 화재 위험이 크다는 보고서가 나왔지만, 주 정부가 이를 무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댐을 폐쇄해 물 공급이 부족해져 산불 진화가 어려웠고요. 여기에 마우이섬에 설치된 80여 개 비상 사이렌이 하나도 울리지 않았으며, 인터넷과 라디오가 먹통이 되면서 주민들이 대피도 못 한 채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재가 산불 피해를 키운 겁니다.
지난달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선 열대성 폭풍으로 대홍수가 발생했어요. 국제기구들은 공식 확인된 사망자가 4000명을 넘고, 실종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리비아는 통일된 하나의 정부가 있는 것이 아니고, 동쪽과 서쪽을 두 정파가 나눠 통치하고 있어요. 정치 상황이 혼란스럽다 보니 국가 기반 시설이 노후한 곳이 많습니다.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댐 두 곳이 붕괴하면서 많은 지역이 물에 잠겼어요. 홍수가 발생하면 댐이 터질 것이라는 경고에도 정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했죠. 폭풍과 호우에 대한 기상청 예측도 엉망이었고, 대피하라는 경보조차 없었다고 해요. 조금만 위험 신호에 귀를 기울였다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입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