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평소 미술 활동에 자주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작품을 느끼는 법을 익혀 더 잘 소통하려고 미술관에 가서 미술 작품을 감상해요. 느끼는 것은 누구라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아요. 수학 문제를 연습 삼아 풀어보듯 ‘느끼기’도 꾸준히 연습하고 반복해야 실력이 늘어요. 요즘에는 미술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하죠. 관람자가 직접 창작 과정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거나, 미리 미술가에게 관람자와 소통하는 작품을 만들도록 의뢰하고 그 과정이나 결과를 전시하기도 해요.
한 예가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내년 3월 3일까지 진행되는 전시 ‘우리가 모여 산을 이루는 이야기’입니다. ‘미술의 실천’을 목표로 내세우는 이 전시는 미술가와 관람자 모두를 ‘공유와 소통’이라는 주제에 참여하도록 초대합니다. 참여자들이 해야 할 일은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몸소 나서서 행동하는 거예요. 전시 중인 작품을 몇 점 살펴볼까요?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메시지
<작품 1>은 싱가포르 미술가 아만다 헹(1951~)의 ‘또 다른 여성’이라는 사진 작품이에요. 두 사람의 얼굴을 흑백 사진으로 찍은 후, 그 위로 두 사람의 손을 올려놓고 다시 컬러 사진을 찍었습니다. 얼굴과 손의 주인은 작가 아만다 헹과 그녀의 어머니예요. 중국계 가정에서 자란 작가는 성장하는 동안 내내 어머니와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대화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해요. 작가의 어머니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 방언을 사용하는 데다가 문화 차이도 심했고 세대 차이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어머니가 영정 사진을 찍어달라고 딸에게 부탁했습니다. 어머니의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작가는 어머니의 눈과 손짓을 자세히 보게 됐어요. 말을 통해 전해지지 않더라도 오랜 세월 모녀는 눈빛과 손의 감촉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작가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이 사진은 그 눈빛과 손의 감촉을 사진으로 표현한 결과물이에요. 세상에는 말의 영역을 넘어서는 소통의 경험이 많습니다. 간혹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막연히 느낌으로 의미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그때가 바로 언어를 넘어선 소통의 순간일 겁니다.
때로는 수백 마디 말보다 침묵이 더 강렬한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작품 2>는 필리핀 미술가 키리 달레나(1975~)의 ‘지워진 슬로건’이라는 사진 연작 중 하나입니다. 단체복을 입은 여자들이 아무 글자도 쓰여 있지 않은 흰 손 팻말을 든 채 거리를 행진하고 있네요. 1980년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전 대통령의 독재 정치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찍은 기록 사진을 편집한 것입니다. 작가는 사진을 디지털로 복제하고 편집해 손 팻말에 적힌 문구를 지웠어요. ‘지우기’라는 작가의 행위는 독재의 역사를 슬쩍 덮어버리려는 현재 권력, 그리고 독재의 기억조차 하얗게 잊어버린 대중을 암시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의 탄압을 받아 마치 음소거당한 듯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뜻하기도 해요. 침묵으로 저항하는 사람들 손에 쥐어진 무언의 손 팻말 자체가 그 어떤 외침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미술 작품 통해 관계를 경험하기
<작품 3>은 ‘대화를 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아만다 헹이 설치한 둥근 탁자와 의자예요. 탁자 가운데에는 콩나물이 수북이 쌓여있고, 관람자들은 의자에 앉아 콩나물을 다듬으며 우연히 만난 타인과의 대화에 참여하게 되죠. 이 설치 작품은 1980년대 싱가포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을 작가가 떠올리며 마련한 대화의 자리라고 해요. 남편이 출근한 뒤 육아와 가사를 맡은 아내들은 같은 동네 한 집에 모여 찬거리를 함께 준비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유대감을 쌓았다고 해요. 여기서 ‘콩나물 다듬기’는 대화와 아무런 관련 없는 집안일에 불과하지만,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마음을 터놓는 매개 역할을 한답니다.
<작품 4>에서 홍미선(1960~)은 실뜨기라는 놀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끈과 같은 관계를 보여줍니다. 실뜨기는 상대 손에 걸쳐진 실을 여러 방법으로 내 손으로 옮겨놓는 놀이죠. 사람들끼리 서로 연결되고 얽혀 있는 관계란 본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작가는 이렇게 실뜨기처럼 오고 가며 모양을 만드는 행위라고 상상했습니다. 인간 관계도 실뜨기처럼 나의 실수 혹은 상대방의 실수로 엉킴이 생길 수 있어요. 좋은 관계란 상대와 내가 만들어 내는 조화로운 변화 속에서 지속된다는 것을 실뜨기를 통해 체험할 수 있습니다.
미술은 만지고 빚고 쌓고 자르고 풀칠하고 지우는 등 손으로 하는 다양한 경험을 포함하는 활동입니다. 이런 감각적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몰랐던 솔직한 마음으로 돌아가기도 해요. 미술에서 무엇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는지는 개인이 지닌 감수성의 정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분명 미술 작품은 그것을 만든 미술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미술가가 작품의 에너지원으로 끌어오는 일상 경험의 세계는 서로 공유되는 것이어서 누구라도 나눠 가질 수 있으니까요. 오늘은 성탄절이에요. 이웃과 따스한 마음을 나누며 소통하는 날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