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1874~1934)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곳곳에서 그의 대표작 ‘행성’을 연주하는 공연들이 열리고 있어요. 지난 2월 KT심포니오케스트라가 모음곡 중 일부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렸고, 오는 6월에는 KBS 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지휘자 요엘 레비)에서 연주된다고 합니다. 오늘은 구스타브 홀스트라는 작곡가보다 더 유명한 ‘행성’에 대해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점성술에 대한 관심에서 만들어져
우선 작곡가 홀스트부터 살펴보죠. 1874년 영국 첼트넘에서 태어난 그는 1893년 런던 왕립음악원에 입학해 작곡과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원래는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했지만, 오른손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 했어요. 이후 트롬본 연주자로 오케스트라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죠. 홀스트는 당시 유행하던 독일 낭만주의 음악을 따라가기보다 영국 전통 민요에 기반한 독자적인 음악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어요. 1905년부터 런던 세인트폴 여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일했어요. 거기서 학생들이 부르는 합창 음악에 영국 민요와 교회 음악의 요소를 창의적으로 결합시키려고 했습니다.
홀스트가 1916년에 완성한 관현악 모음곡 ‘행성’은 점성술에 대한 관심으로 만든 곡이에요. 홀스트는 친구에게 별의 빛이나 위치 등을 보고 개인과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 점성술을 배워요. 점성술에 흥미를 느낀 홀스트는 우주의 무한함과 별들의 아름다움, 그리고 태양계 행성들이 지니고 있는 서로 다른 모습들에 대한 상상을 극대화해 ‘행성’이라는 곡을 만듭니다. 이 곡은 태양계 행성 8개 중 지구를 제외한 행성으로 총 7개 악장을 만들었어요. 순서는 화성, 금성, 수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입니다. 2006년 태양계 행성에서 탈락한 명왕성에 관한 곡이 빠져 있는데, 명왕성은 ‘행성’이 완성된 이후인 1930년에 발견됐기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았답니다.
태양계 행성들의 이름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에서 따왔죠. 행성의 7개 악장에도 행성 이름과 함께 신들에 대한 부제가 달려 있어요. 첫째 곡 화성의 부제는 ‘전쟁의 신’이에요. 긴장감 있는 리듬으로 전개되는 이 곡에는 장엄하면서도 불안한 느낌이 담겨 있어요. 둘째 곡 ‘금성, 평화의 신’은 관능적이면서도 온화한 분위기의 느린 곡으로,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연상시켜요. 셋째 곡 ‘수성, 날개 달린 신의 전령’은 전반적으로 가볍고 빠른 리듬이 두드러진 특징이며, 곡에서 익살스러움이 느껴져요.
넷째 곡 ‘목성, 쾌락의 신’은 행성 악장들 중 가장 유명해요. 이 곡은 금관악기의 힘찬 소리를 통해 태양계에서 가장 큰 목성의 거대함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죠. 곡의 중간부 멜로디는 매우 서정적으로 구성돼 있어요. 다섯째 곡 ‘토성, 노년의 신’은 차분한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관악기들이 합세하면서 곡에 힘이 실리고 절정으로 나아갑니다. 여섯째 ‘천왕성, 마법사’는 금관악기와 타악기의 생동감 넘치는 연주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우리의 감각을 흔들어 혼란스럽게 만드는 마법사를 떠올리게 해요. 마지막 ‘해왕성, 신비로운 신’은 피아노와 비슷하게 생긴 첼레스타의 영롱한 음색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주며, 후반부에 여성 합창을 더해 신비로움을 강조해요.
영화·뉴스에도 쓰였죠
이처럼 우주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는 ‘행성’은 다양한 음악에 영향을 줬어요. 특히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영화 ‘스타워즈’의 메인 테마곡과 전투 장면 등에 나오는 음악들은 작곡가 존 윌리엄스가 행성 모음곡 중 ‘화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어요. 세계 최고의 영화음악 작곡가로 불리는 한스 치머가 만든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음악 ‘전투’에도 ‘화성’의 멜로디 일부를 차용한 것으로 들리는 대목이 나옵니다.
영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이자, 영국 왕실 행사 등에서도 자주 나오는 ‘내 조국이여, 나 그대에게 맹세하노라(I Vow To Thee, My Country)’도 행성 악장들 중 ‘목성’의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노래입니다. 일본의 전자음악 선구자인 도미타 이사오가 ‘목성’을 편곡한 음악은 1980년대 MBC 뉴스데스크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어요.
이처럼 홀스트의 ‘행성’은 우리에게 꽤 오래전부터 많이 알려졌지만, 멜로디와 음악의 제목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음악부터 친해진 다음 작품과 작곡가에 대해 알아가는 법도 재미있는 음악 감상법이 될 수 있죠. 이제 홀스트의 ‘행성’에 대해 알았으니, 다시 한번 감상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