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비엔날레와 한국 작가들

프랑스 남부 투레트에는 날이 좋으면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 하나 있습니다. 작고한 현대 미술가 이성자(1918~2009)의 작업실이 이 언덕에 있지요.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그림을 그리며 지내던 곳으로, 이성자는 이 작업실을 ‘은하수’라고 불렀어요. 최근 프랑스 정부가 ‘은하수’를 ‘주목할 만한 현대건축물’로 지정했습니다. 지어진 지 100년이 안 되는 건축물 중에 문화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을 보전하고 활용하자는 취지인데요. 앞으로 프랑스 주요 간행물이나 도로 표지판에 은하수에 대한 정보가 안내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이성자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더 높아졌어요. 때마침 그의 작품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개인전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에선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행사가 열리고 있어요. 본전시가 열리는 행사장뿐 아니라 옛 궁전 건물 등 곳곳에서 비엔날레가 인정하는 공식 전시회를 보기 위해 세계의 미술 애호가들이 베네치아를 찾고 있는데요.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둘러보며, 이곳에서 전시 중인 이성자를 비롯한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살펴볼까요?

이성자의 ‘은하수’

한국에서 세 아들의 어머니로 살던 이성자는 1951년에 막연히 미술가의 꿈을 품고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를 탔어요. 외지에서 서른셋 나이에 홀로 시작한 미술가의 삶은 고생스러웠지만,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건 한국에 두고 온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성자는 미술가로서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기 전까지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았고 10여 년을 오직 그림에만 전념했어요. 1965년에 한국에서 첫 귀국 전시회를 가지기까지 아마도 마음속으로는 수백번도 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갔을 겁니다.

작품1 - 이성자, '큰곰자리에 있는 나의 오두막 10월 2', 1995년. /갤러리현대

‘큰곰자리에 있는 나의 오두막’<작품 1>에서 이성자는 투레트 언덕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을 하늘의 별들 속에 함께 배치했어요. 반원 두 개가 마주한 빨갛고 동그란 건물이 바로 ‘은하수’예요. 작가는 매일 밤 언덕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자신도 무한한 우주의 일부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느낌을 화폭에 담아내면서 그는 늘 그리워했던 한국 땅에 대한 지리적 거리를 초월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자신을 옭아매는 한계에서도 벗어나 진정 자유롭고 탁 트인 우주 풍경을 그릴 수 있었지요.

김윤신과 구정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는 김윤신(89) 조각가는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미술을 더 공부했어요. 그리고 1984년부터는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어요.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이번 본전시 주제에 걸맞게 오래도록 외지 생활을 했고, 지금은 아르헨티나가 제2의 고향이 된 사람이에요. 그는 자연의 재료가 지닌 본래의 속성을 그대로 강조하는 작업을 하는데, <작품 2>는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고 <작품 3>은 돌을 쪼아 만든 것이에요. 둘 다 제목은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입니다. 서로 다른 둘이 합해져 하나가 되고,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 다른 하나가 된다는 뜻이에요. 김윤신의 예술 철학이 나타나 있습니다. 또 조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말해주기도 해요. 조각가가 자연의 재료에 혼신을 쏟아부어 그것과 하나가 되어야 작품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때 작품은 원래의 재료에서 다듬어져 나온 것이지만, 조각가의 손을 거쳤기에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됐다는 의미지요.

작품2 -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6', 1986년. /국제갤러리
작품3 -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01-719', 2001년. /국제갤러리

한국관에서는 구정아(57)의 향기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향은 보이지 않으며 만질 수도 없고 경계도 없어요. 하지만 오랜 기억을 머금고 있어서 사람들을 머나먼 추억의 시간과 장소로 데려가 줍니다. 구정아가 창조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전시장 가운데 놓여 있는데요<작품 4>. 코에서 수시로 향이 뿜어져 나옵니다. 이 아이는 호기심, 신비로움, 장난스러움, 진정성, 그리고 감수성 등의 에너지를 사람으로 표현한 것이죠.

작품4 - 구정아, '오도라마 시티', 2024년. /PKM갤러리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는 한국의 도시를 떠오르게 하는 향을 수집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했어요. 그리고 설문 참여자들이 말해준 향기 사연을 토대로 한국을 상징하는 17가지 향을 제작해서 전시장에 선보이고 있어요. 한국을 냄새로 경험할 수 있게 한 거예요.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역사

미술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근대 올림픽이 처음 열린 1896년보다 한 해 먼저인 1895년에 시작됐어요. 처음에는 ‘베네치아 국제 미술 전시회’라는 이름이었는데, 이후 격년으로 전시회가 개최되면서 비엔날레(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로 부르게 됐어요. 오늘날 비엔날레는 격년으로 열리는 대규모 국제 전시회를 대표하는 용어가 됐지요.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전시 구성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전체 주제에 따라 세계 각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놓은 본전시로, 올해 주제는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입니다. 다른 하나는 국가별로 나누어 놓은 전시입니다.

국가별 전시는 1907년 벨기에를 시작으로 자르디니 공원에 하나씩 개별 전시관이 건립되다가, 1960년쯤 공간 부족으로 거의 신청을 받지 않게 됐는데요. 한국관은 비엔날레 100주년이 되는 1995년에 자르디니 공원 끝자락에 뒤늦게 세워지게 됩니다. 2년 전 백남준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가졌던 독일관이 최고로 영예로운 황금사자상을 받게 되자, 수상의 자리를 기회 삼아 백남준이 한국관을 세우자고 적극 요청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