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건축의 거장 마키 후미히코가 지난 6일 도쿄 자택에서 96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1987년 일본 건축가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고 일본 현대 건축을 제일 앞에서 이끈 단게 겐조(1913~2005)의 수제자였습니다. 그 역시 1993년 일본에서 두 번째로 프리츠커상을 탄 주인공이자 일본 건축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드높인 전설적인 인물이지요.

당대 일본의 유명 건축가 대부분이 주로 자국에서 공부를 하던 것과 달리 그는 도쿄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자유분방한 학풍의 크랜브룩 예술 아카데미와 세계 최고 건축 대학 중 하나인 하버드대에서 석사를 땄죠. 미국의 유명 건축사무소 SOM에서 근무했으며,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와 하버드대에서 교수를 지냈습니다. 1965년 일본으로 돌아와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차린 이후로는 일본에서 보기 드문 해외파 건축가로 인정받았죠.

마키 후미히코가 설계한 '제4 세계무역센터(4WTC)' /마키 앤 어소시에이츠

그는 세계가 일본 건축을 주목하게 만든 메타볼리즘 운동의 주역 중 한 명입니다. 메타볼리즘은 전후 급속한 경제 성장기에 도시와 건축을 성장과 변화를 거듭하는 유기체처럼 바라보자는 철학을 말합니다. 마키 후미히코는 메타볼리즘 이론과 더불어 자신에게 익숙한 서구 모더니즘 건축, 그리고 일본 전통 건축의 개념을 통합해 자신만의 건축을 시도했습니다.

그의 대표 작품은 ‘힐사이드 테라스’예요. 도쿄 다이칸야마 지역에 30여 년에 걸쳐 만든 복합 단지예요. 저층은 상업 공간, 상층은 주거와 오피스 공간으로 구성돼 있죠. 철과 알루미늄으로 뼈대를 구성하고 경량 콘크리트 구조물을 결합해 지었어요. 서구 모더니즘 건축의 실용성에 일본의 미니멀리즘이 만난 건물은 간결하면서 유리를 활용해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납니다.

이 건물에 일본 전통 건축의 처마 아래 공간을 재해석한 공간도 만들었어요. 사람들은 이런 공간들을 오가며 다양한 길과 계단, 그리고 조경을 경험할 수 있어요. 자연과 건축이 상호 작용하는 공간에서 편안하고 즐거운 산책을 즐길 수 있지요. 또 상업 시설과 주거, 오피스 공간을 유기적으로 배치하면서도 각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각자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이런 점들 때문에 이 건물은 지은 지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이용하고 있답니다.

뉴욕 ‘제4 세계무역센터(4WTC)’도 마키 후미히코가 설계했습니다.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부지에 세워진 298m 높이의 마천루이지요. 벽면을 통유리로 처리해 모든 층에서 9·11 추모 공원을 내려다볼 수 있어요. 유리창으로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건물 내부는 필요에 따라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