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중앙아시아의 세 국가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을 국빈 방문했어요. 이때 우즈베키스탄 방문을 마무리하는 일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 사마르칸트를 찾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샵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과 함께 아프로시압 박물관, 레기스탄, 구르 아미르, 울루그 벡 천문대 등 유적을 방문했어요.
해발고도 750m 산지에 위치한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특히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동서양 문화가 교차하며 발전했어요. 2001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오늘은 사마르칸트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게요.
중국과 로마 잇는 중계무역으로 번성
사마르칸트에는 기원전부터 이란계 종족인 소그드인이 살았어요. 고대 소그드인이 살았던 지역을 소그디아나라고 불렀는데, 오늘날 사마르칸트 일대가 그 지역이에요. 중국에서는 이들이 세운 국가를 ‘강국(康國)’이라 불렀죠. 소그드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입에 꿀을 넣어주고, 손에는 아교(짐승의 가죽, 힘줄, 뼈 따위를 진하게 고아서 굳힌 끈끈한 것)를 발랐다고 해요. ‘꿀처럼 달콤한 말로 장사를 해서 번 돈이 손에 들어오면 절대 나가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였다고 해요.
이런 문화 덕분인지 소그드인은 일찍이 상업 활동을 시작했어요. 기원전 3세기 파르티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됐을 때쯤에는 실크로드 교역의 주역이 됐지요. 파르티아는 당시 로마 제국과도 세력을 겨룰 정도로 강성한 나라였어요. 중국 한나라와 로마 제국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으로 부를 축적했어요. 파르티아는 중국 비단을 로마에 팔고 로마의 유리와 금·은 세공품 등을 중국과 동아시아에 전달했는데, 소그드인들이 그 역할을 맡았어요.
사마르칸트는 중요한 거점이었던 만큼 파르티아 외에도 사산조 페르시아, 돌궐, 중국 당나라 등 여러 나라의 지배와 침략을 받았어요. 그러다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급부상한 이슬람의 아바스 왕조가 세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이 도시를 두고 당나라와 격돌했는데, 바로 751년 탈라스 전투예요. 전투에서 이슬람 군대가 승리하면서 사마르칸트는 이슬람 도시로 거듭났어요. 이때 중국 포로들을 통해서 중국의 제지술, 비단 직조술 등이 이슬람 세계에 전해졌죠. 전쟁 직후 사마르칸트에는 제지 공장이 세워졌고 제지 기술이 발전했어요. 이 지역은 19세기까지 이슬람 문화권의 대표적인 종이 생산지가 됐습니다. 이후에도 이 일대 수많은 기술자, 상인, 학자들이 사마르칸트로 몰려들면서 명실상부한 중앙아시아 문명의 중심지로 발전했어요.
파괴와 부활
사마르칸트의 운명은 칭기즈칸의 침략으로 바뀌고 말았어요. 11세기 말 이 지역에는 호라즘 왕국이 자리 잡고 성장하고 있었어요. 왕국은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하는 동서 무역을 독점해 번영을 이뤘죠. 하지만 칭기즈칸이 요구한 교역과 외교 관계 수립을 거절해 몽골군의 침략을 받았어요. 이때 몽골군이 사마르칸트를 침공해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모스크(이슬람교에서 예배하는 건물)를 포함해 도시 시설을 초토화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이 시기까지 사마르칸트의 중심지는 북부 아프라시압 언덕 일대였는데, 이때 상당수가 파괴돼 현재도 소수 유적만 남아 있어요.
완전히 폐허가 된 사마르칸트가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14세기 후반 티무르 제국이 이곳을 수도로 삼으면서부터였어요. 티무르 제국은 튀르크계 티무르(1336~1405)라는 인물이 세운 거예요. 그는 칭기즈칸의 명예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군사적 정벌을 거듭해 대제국을 건설하고, 수도 사마르칸트를 새롭게 정비했어요. 푸른 빛을 좋아한 티무르는 도시의 주요 건물을 푸른색으로 꾸몄어요. 사막과 초원을 오가며 교역하던 상인 집단은 푸른 빛이 보이면 사마르칸트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았다고 해요.
티무르는 레기스탄을 도시의 새로운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레기’는 ‘모래’, ‘스탄’은 ‘광장’이란 뜻인데, 이 지역이 운하를 따라 실려온 모래와 진흙이 굳어 형성된 지반이라서 붙은 이름이라고 해요. 레기스탄에선 아미르(아랍어로 ‘지도자’라는 뜻)의 대관식과 외국 사신들의 아미르 알현식이 열렸을 뿐 아니라, 제국 내 중요한 일들이 결정되고 공표됐죠. 제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어요. 이곳에선 바자르(대시장)도 열렸죠. 1403년 사마르칸트를 방문한 프랑스 사절 클라비호는 ‘바자르가 성을 가로질러 형성돼 세계의 사방에서 몰려든 물건으로 가득 차고 거래 규모가 얼마나 큰지 그 많은 상품이 금방 동이 나버리곤 했다’고 묘사했어요. 이뿐만 아니라 티무르는 원정을 나갈 때마다 정복지의 유명한 예술가와 건축가, 학자 등을 데려왔어요. 그렇게 티무르 제국은 경제·문화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16세기 튀르크계 우즈베크인의 침략으로 티무르 제국이 몰락하며 사마르칸트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어요. 티무르 제국 몰락 후 이 지역에 우즈베크인이 세운 샤이반 왕조는 서쪽 부하라로 수도를 옮겼고, 이후 사마르칸트는 점차 쇠퇴했어요. 19세기 접어들어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사마르칸트는 러시아령으로 편입됐어요.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됐지만, 약 5년 만에 타슈켄트에 그 자리를 내줬어요. 1991년 우즈베키스탄이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이자 역사 도시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