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라틴아메리카의 볼리비아에서 군부가 민주주의 회복 등을 요구하며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행정 수도 라파스에 있는 대통령궁에 진입하는 쿠데타 시도가 벌어졌어요. 후안 호세 수니가 장군(전 합참의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날 쿠데타는 시민들의 거센 반발과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3시간 만에 진압됐다고 해요. 그런데 수니가 장군이 체포 현장에서 취재진에게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의 지시로 이런 일을 벌였다고 주장해, 후폭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대요. 오늘은 이런 볼리비아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잉카 제국, 스페인에 무너지다
과거 라틴아메리카 지역에는 아즈텍·잉카·마야 문명이 발달해 있었어요. 볼리비아 지역은 잉카 제국에 속해 있었어요. 13세기 무렵 세워진 잉카 제국은 오늘날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칠레 북부 등의 지역을 지배한 문명이에요. 스페인 정복자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어요.
그런데 잉카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문명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온 지 50여 년 만에 멸망해요. 1530년대 초 스페인 탐험가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잉카 제국의 마지막 황제를 죽이고 수도 쿠스코를 점령했어요. 당시 피사로의 군대는 200명도 되지 않았다고 해요. 잉카 제국 군대는 8만명이었고요. 피사로는 어떻게 잉카 제국의 군대를 이길 수 있었을까요?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스페인 군대는 총과 대포를 가지고 있었지만 원주민들은 활과 화살, 나무와 돌로 된 창이나 몽둥이, 청동과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칼 정도의 무기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돼요.
‘엘도라도’는 전설 속에 나오는 황금의 땅을 말해요. 엘도라도는 원래 ‘황금빛이 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온몸에 황금 가루를 칠한 원주민 추장을 가리켰어요. 그런데 ‘황금을 칠한 사람’이 ‘황금의 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어 유럽에 전달되면서, 많은 유럽 사람이 라틴아메리카로 황금을 찾아 떠나게 만들었지요.
먼저 움직인 곳은 스페인이었어요. 피사로와 코르테스를 비롯한 수많은 스페인 탐험가가 금과 은을 찾아 라틴아메리카로 향했지요. 황금을 찾으러 온 유럽 사람들은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바꾸어 놓았어요. 은맥이나 금광이 발견된 곳은 순식간에 거대한 스페인식 도시로 변했어요. 가톨릭교회가 세워지고, 관공서가 들어서고, 시장이 만들어졌죠.
볼리비아의 포토시도 그런 곳이었어요. 안데스산맥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던 포토시는 산에서 엄청난 은맥이 발견되면서 커다란 도시로 변모했어요. 17세기에는 16만명에 이르는 사람이 사는 거대 도시가 됐어요. 말발굽도 은으로 만들어 쓸 정도였다는 얘기가 전해질 만큼 은이 많았다고 해요. 당시 스페인에서는 ‘포토시’가 그 자체로 ‘막대한 부’를 뜻하는 말로 유행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은으로 돈을 번 사람들은 백인 광산업자나 사업가들이었어요. 원주민이나 광부들은 힘든 노동에도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은과 주석,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 풍부
19세기 시몬 볼리바르는 스페인에서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등이 독립하도록 도왔어요. 그는 ‘해방자 볼리바르’라고 불렸어요. 특히 볼리비아는 ‘볼리바르의 나라’라는 뜻이에요. 나라 이름으로 시몬 볼리바르를 기리고 있는 것이죠.
해방된 볼리비아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통해 나라를 발전시키고자 했어요. 볼리비아는 은과 주석, 천연가스와 같은 천연자원이 풍부해요.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은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하위권에 속해요. 천연자원 수출이 활발할 때는 괜찮았지만, 천연자원 가격이 하락하거나 천연자원 대체재이 개발되는 등의 이유로 경제가 흔들렸어요. 또 볼리비아 국내에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하면서 국가 경제가 발전하기 어려웠죠. 이런 환경으로 인해 볼리비아는 반복적으로 경제 위기를 겪었고, 이는 정치 혼란으로 이어졌어요.
볼리비아에선 쿠데타가 자주 일어났어요.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위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난했던 농민과 노동자들은 경제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 나섰는데요. 좌파 정당들이 만들어지면서 이들의 투쟁은 좀 더 조직적으로 진행됐어요.
경기 침체를 해결하고자 정부가 시행한 정책들이 노동자들의 삶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자, 저항의 움직임이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정부는 농민과 노동자들의 저항을 무자비하게 진압했어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극단적인 정치 변화가 쿠데타의 형태로 반복됐습니다.
그러다 2005년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최초로 나옵니다. 에보 모랄레스예요. 13년간 집권한 그는 수세기 동안 이어진 사회적 계급 구조를 뒤집기 위해 노력했어요. 또 천연자원은 볼리비아 국민의 배타적 소유물로 국가에 의해 운영되어야 할 자산이라고 선언했죠. 부유층의 땅을 몰수해 가난한 원주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2019년 4선 연임에 도전한 그는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위 등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됩니다.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멕시코로 망명해요. 그러다 2020년 다시 볼리비아로 돌아와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