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하경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동요 ‘가을바람’에는 “살랑살랑살랑 살랑살랑살랑 가을바람 살랑 불어옵니다”라는 가사가 있어요. 가을에 가장 많이 부는 바람은 이 동요 가사처럼 살랑살랑 불어오는 ‘서풍’입니다.

조선 시대 학자인 이익의 책인 ‘성호사설’을 보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바람의 이름이 다르게 나옵니다. 동풍은 샛(沙)바람, 서풍은 하늬(寒意)바람, 남풍은 마(麻)파람, 북풍은 높(高)바람으로 불렀는데요. 가을에 많이 부는 서풍은 시원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하늬바람이라 불렀지요. 그리고 뱃사람들이 불렀던 순수한 우리나라 가을바람 이름은 ‘갈바람’으로, 가을바람의 준말이랍니다.

아일랜드인들의 설화적인 시 ‘운명의 바람’은 태어날 때의 바람 방향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말해요. 서풍이 불 때 태어난 아이는 검소한 인생을 산다고 해요. 동풍이 불 때 태어난 아이는 부자가 되고, 남풍일 때는 사치스러우며, 북풍의 경우에는 전사(戰士)가 된다고 합니다.

17세기 영국 작가 아이작 월턴은 서풍이 불 때는 모두에게 가장 좋을 때라고 노래했고요. 번개가 전기 현상이라는 것을 발견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서풍이 불 때 사업을 시작하라’고 말했다고 해요. 서풍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선조들도 서풍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하늬바람(서풍) 불 때 일해라’는 속담이 있는데요. 맑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 때 일의 능률이 가장 높아진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가을의 일반적인 날씨는 외국 관광객들도 탄성을 지를 만큼 아름답고 상쾌합니다. 구름은 거의 없으며 건조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옵니다. 이러한 기상 상태에선 저절로 유쾌한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요. 미국 보스턴 아동 병원의 비게노 프린스 박사는 이때 사람들이 명랑한 기분으로 어려운 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해요.

‘하늬바람에 곡식이 모질어진다’라는 속담도 있는데요. 여름이 지나 서풍이 불게 되면 곡식이 여물고 대가 세진다는 말입니다. 또 ‘비 올 때 바람이 서풍으로 바뀌면 곧 날씨가 갠다’는 속담도 있는데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속담이지요. 기압골이 지나갈 때 불던 남동풍이 고기압이 다가오면서 서풍으로 바뀌어 날씨가 좋아진다는 말입니다. 아직은 여름에 많이 부는 남풍으로 여전히 덥지만, 일주일 뒤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시원한 서풍이 많이 불어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