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의 공연 장면. 여주인공 벨라(왼쪽)와 그의 제자 크리스토퍼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벨라는 암 진단을 받은 후 크리스토퍼에게 안락사를 부탁하죠. /라이브러리컴퍼니

여기 안락사를 선택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명은 예일대에서 문예 창작을 가르치고 있는 중년의 여교수 벨라, 또 한 명은 성공한 건축가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독일인 건축가 게르트너죠. 건강하고 지적인 여성이었던 벨라는 어느 날 위암 진단을 받습니다. 그녀는 오랜 투병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생을 마친 어머니를 떠올리며 암이 더 진전되기 전에 안락사를 선택해요.

게르트너는 누가 봐도 아주 건강한 노년 남성입니다. 하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고, 장성한 두 아들과의 대화 끝에 역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기로 하죠.

과연 두 사람의 선택은 올바른 일일까요? 오늘은 두 편의 연극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안락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운드 인사이드’(10월 27일까지·충무아트센터)와 ‘고트’(9월 15일 종료·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입니다.

연극 ‘고트’의 주인공 게르트너(오른쪽)도 안락사를 선택해요. 게르트너의 안락사 신청에 대해 열린 윤리위원회에선 변호사(왼쪽)·의사·성직자 등이 모여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에 대해 논의합니다. /극단 산수유

연명의료 중단하는 존엄사, 조력 자살하는 안락사

먼저 죽음과 관련한 의료 용어로 존엄사(연명의료 중단)와 안락사(의사 조력 자살)를 구분해서 알아볼게요. 존엄사는 말 그대로 ‘존엄을 지켜 죽는다’는 것을 뜻해요. 말기암 등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단계에 접어든 환자에게 인공호흡기 착용과 심폐 소생술 등 소모적인 의료 행위를 중단하는 것이에요. 다만 존엄사를 택할 때도 진통제 투여나 영양분 공급 등은 계속되지요. 우리나라는 2018년에 존엄사가 합법화됐어요.

반면 안락사는 큰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 등에게 약물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을 의미해요. 안락사는 ‘의사 조력 자살’이라고도 불리는데요, 환자가 의료진에게 요청한 약물을 직접 복용해 삶을 마감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뤄져요. 지난달 스위스에서는 질소 가스를 분사하도록 설계된 캡슐처럼 생긴 기계 안에 미국인 여성이 들어가 직접 버튼을 눌러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어요. 현지 검찰은 이를 스위스 법이 허용한 안락사의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판단, 기기 제조사 관련자들을 자살 방조 혐의로 기소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선 모든 형태의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고 있어요. 안락사의 경우 한 개인이 겪는 죽음이라는 과정에 다른 누군가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윤리적인 문제도 남아 있죠.

한 윤리위원이 게르트너의 안락사 신청에 대한 주장을 펼치고 있어요. /극단 산수유

한국도 안락사 등 논란이 많아요

우리 사회에선 존엄사와 안락사 등 ‘죽음을 선택’하는 문제에 대해 어떤 논의가 오가고 있을까요?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어요. 당시 머리를 다친 한 50대 남성이 보라매병원에서 뇌수술을 받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환자의 아내가 퇴원을 요구했죠. 의사는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퇴원시켰고, 결국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뒤 5분 만에 죽음을 맞습니다. 이후 7년에 걸친 재판이 이어지며 의료진은 살인방조죄로 유죄를 선고받아요. 이 판결을 계기로 의료계에선 의사가 환자의 죽음을 돕는 행위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됐죠.

이런 분위기는 2008년 있었던 ‘김 할머니 사건’으로 반전됐어요. 김 할머니는 당시 의식불명에 빠져 있었는데요. 할머니의 가족은 연명치료가 무의미하니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죠. 이후 법원은 “현상 유지만을 위한 연명치료는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친다”라며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어요. 이후 연명치료 중단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2016년엔 ‘웰다잉(well-dying)법’이라고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어요. 회복 가능성이 없고 사망에 임박한 환자에 한해 연명치료를 멈출 수 있게 된 거죠. 존엄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2년에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되기도 했는데요. 회복 가능성이 없고, 참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스위스도 약물 복용 방식만 합법화했죠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스위스는 1942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안락사를 허용한 국가입니다. 다만 스위스 역시 환자가 약물을 직접 복용하는 형태의 ‘조력 자살’만 허용하고 있어요. 그만큼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크기 때문이에요. 다른 나라도 안락사는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1997년 오리건주(州)를 시작으로 11개 주에서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조력 자살 방식만 시행되고 있어요.

안락사를 다룬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의 주인공 벨라는 제자 크리스토퍼에게 약물을 투여해달라고 부탁해요. 하지만 크리스토퍼는 약물만을 두고 사라지지요. 이때 벨라는 연극의 제목처럼 ‘내면의 소리’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나는 진짜 죽고 싶은 것일까?”

연극 ‘고트’에서는 의사·성직자·변호사가 모여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이 지친 게르트너에게 남겨진 마지막 선택은 죽음밖에 없을까요. 노년의 외로움과 고독을 달랠 수 있는 방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오늘날 안락사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안락사가 제도화될 경우 미성년자나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 사회적 약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단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어요. 반면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암 환자 등에 한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