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누벨이 설계한 프랑스 파리의 ‘아랍 세계 연구소’ 입니다. 그는 건물 한쪽 벽면을 아랍 전통 문양을 닮은 모듈로 꽉 채웠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올해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설립 40주년을 맞았습니다. 럭셔리 브랜드 기업인 까르띠에가 현대미술을 후원하기 위해 세운 프랑스 최초의 기업 재단이에요. 지금까지 재단은 다양한 기획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세계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재단 건물도 남다릅니다. 건물 입면(정면 외벽)에는 실제 건물보다 큰 유리를 세웠고, 그 주위를 유리 담장이 둘러싸며 빛의 투명함을 강조해요.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은 바로 ‘빛의 장인이라 불리는 프랑스 건축 거장 장 누벨(1945~)입니다.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난 누벨은 화가를 꿈꿨지만, 공학자나 교육자가 되길 바라던 부모님과 타협한 결과 건축가가 됩니다. 프랑스 최고 미술 학교인 에콜데보자르에 수석으로 입학한 후 전시 디자인이나 무대미술에서도 역량을 보였죠.

누벨의 운명을 바꾼 건축물은 1987년 완공된 파리 ‘아랍 세계 연구소’입니다. 1981년 프랑스에선 아랍 문화를 다룬 연구소를 짓는 건축 공모전이 열렸는데, 누벨의 아이디어가 채택된 거예요. 그는 아랍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어냈습니다. 서구 건축의 외형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아랍 전통 양식인 마슈라비아(Mashrabiya)의 기하학적 패턴에서 영감을 얻은 네모난 모듈 240개로 건물 벽면 한쪽을 빼곡히 채웠어요. 모듈 안에는 카메라 조리개처럼 여닫히는 원형 기계 장치가 들어 있는데, 햇빛의 강도에 따라 실내로 들어오는 빛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요. 이 건물로 누벨은 전통과 현대, 아랍과 서양의 문화를 조화시켰다는 극찬을 받았어요.

누벨에게 빛은 단순한 채광이 아니라 시공간의 경험을 표현하는 핵심 재료입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1994), 스위스 루체른 복합 문화 시설 KKL(2000),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그바르 타워(2005) 등에서 그가 어떻게 빛을 활용하는지 잘 확인할 수 있답니다.

누벨은 아랍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축물을 많이 남겼어요. 루브르 아부다비(2017)와 카타르 국립 박물관(2019)이 대표적이에요. UAE의 수도 아부다비에 있는 루브르 아부다비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유일한 해외 분관이에요. 아랍 전통 마을처럼 총 55개의 작은 건물을 배치하고, 좁은 골목과 수로, 광장도 조성했죠. 천장엔 야자수 잎을 엮은 듯한 직경 180m 크기 철제 돔을 얹어 내부로 햇빛이 들어오게 했답니다.

카타르 수도 도하에 있는 카타르 국립 박물관은 ‘사막의 장미’라는 이름의 광물을 건물로 구현했어요. 디스크(disc) 모양의 거대한 원판을 불규칙한 사선으로 무수히 배열했지요. 누벨은 한국에선 리움미술관(M2)과 돌체앤가바나 서울 스토어를 설계했답니다. 2008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