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 주인공이 미래로 소환되었습니다

조영주 외 3인 지음 | 출판사 책이라는신화 | 1만4000원

신라 시대 ‘비형랑 설화’엔 혼령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비형이라는 이름의 왕자가 등장해요. 그는 성장하면서 귀신들과 친해져 이들을 마음대로 부리기도 해요. 비형은 매일 밤 절 주변에서 귀신들과 소란스럽게 놀았는데요. 이를 알게 된 왕은 비형을 불러요. 비형은 꾸지람을 들을 줄 알았는데, 왕은 ‘신원사 계곡에 튼튼한 다리를 놓아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비형은 기쁜 마음으로 하룻밤 사이에 큰 돌다리를 만들죠. 귀신들을 시켜서요.

사람들은 이 다리를 ’귀신이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귀교(鬼橋)’라고 불렀대요. 지금도 경주에 가면 귀교터가 남아 있답니다. 귀교를 본 왕은 비형을 칭찬하며 다시 물었어요. “친한 귀신들 가운데 사람으로 나타나 나라의 정사를 도울 만한 자가 있겠느냐?” 그러자 비형은 길달이라는 귀신을 데리고 왔어요. 왕은 길달에게 벼슬을 주어 일을 시켰는데, 충성스럽게 모든 일을 잘 처리했다네요. 귀신들이 무섭거나 나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오늘날 수퍼히어로 같은 역할을 한 거예요.

이 책은 네 명의 저자가 다양한 신화 속 주인공들을 현대 사회로 되살려낸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요. 조영주 작가의 단편 ‘999번을 죽어야 귀신이 된다’엔 앞서 얘기한 비형랑 설화의 길달이 등장해요. 주인공 미유는 중학교에 입학해서 마음이 설레요. 게다가 소셜미디어 스타인 조빈과 짝꿍도 됐거든요.

하지만 조빈은 좋은 친구는 아니었어요. 둘 사이 있었던 사소한 갈등을 계기로 조빈은 반 아이들을 동원해 미유를 왕따로 만들어요. 미유의 반려견인 점보가 ‘시골 잡종’이라는 이유로요. 그러던 어느 날 신화 속 길달이 학교로 나타나 미유 대신 조빈에게 통쾌한 복수를 해준답니다. 학교 생활을 어려워하는 다른 친구들의 고민도 해결해주죠. 신라 시대에 인간을 도왔던 귀신 길달이 미래의 학교에 다시 나타나 10대들을 도운 거예요.

이현서 작가의 단편 ‘복수의 삼각형-안개 낀 섬의 초대’엔 마라도 전설에 등장하는 ’아기업개(아기를 돌보는 처녀)’가 나와요. 마라도 전설은 해녀들이 물질을 하러 마라도에 들어가 며칠을 머무르며 시작된 이야기예요. 거기서 한 해녀가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섬을 떠날 때 아기업개를 남겨두지 않으면 모두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어요. 결국 아기업개는 마라도에 남겨지게 되고, 섬에서 굶어 죽었어요. 마라도에 실제로 있는 ‘할망당’은 그를 기리는 신당이랍니다.

소설은 이 마라도 전설을 각색한 거예요. 주인공 현후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발코니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어요. 아버지는 ’절대 마라도에 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현후는 이 소리의 정체를 찾아가다 결국 마라도로 향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전설 속 아기업개를 만나 자신을 둘러싼 비밀들을 풀어가죠. 우리 신화 속 주인공들이 청소년들의 삶에 다시 등장한다는 소설의 발상이 흥미롭고 신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