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위인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재능과 성품을 모두 고려하곤 합니다. 재능은 뛰어날지라도 성품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죠. 17세기 유럽 미술계에 ‘카라바조 스타일’이라는 유행을 확산시킨 한 이탈리아의 미술가가 그랬습니다. 그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 툭하면 싸움을 벌였던 카라바조는 폭력으로 얼룩진 사생활로 인해 당시 위대한 미술적 업적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작품이 가진 가치는 후대에서야 서서히 발견됐고, 20세기 이후부터는 카라바조가 당대 미술계에 끼친 영향력이 재조명되고 있죠.
최근 한국과 이탈리아의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특별 전시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이 지난달부터 내년 3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답니다. 오늘은 카라바조가 남긴 작품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도망자 미술가’ 카라바조
카라바조는 157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고 20세쯤에 화가를 꿈꾸며 로마로 건너갔어요. 처음에는 가난한 화가로 고생하며 헐값에 그림을 그렸지만, 후원자들을 만나면서부터는 제작 의뢰를 받으면서 활동하게 돼요. 카라바조의 그림은 무대 위 연극의 절정 장면 같은 인상을 줘서 한 번만 봐도 잊기 어려워요. 그의 그림이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이유는 배경을 어둡게 하고 물체와 인물에 집중적으로 조명을 비춰 극적인 명암 대비를 연출하기 때문이죠. 카라바조식 ‘테네브로소’(tenebroso·이탈리아어로 어두운 분위기라는 뜻) 그림은 17~18세기 유럽에 유행했던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특징이랍니다.
당시 수많은 화가 지망생이 카라바조를 추종했고 그의 작품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하지만 카라바조에게는 누군가를 제자로 받아들여 차근차근 가르치며 키워낼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없었을 겁니다. 그는 고약한 술버릇을 가진 데다가 성격도 불같았던 탓에 가는 곳마다 폭행 사건을 일으키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 수많은 전과를 남기게 됩니다. 심지어는 살인 사건에도 연루됐죠. 그는 39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수배를 피해 도망다니며 지냈습니다. 추종자는 많았어도 고독했던 거죠. 말년에는 로마로 돌아가 안정된 삶을 꾸리기를 바랐지만, 로마로 가기 전 열병에 걸려 사망하고 맙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천재 미술가는 어떤 작품들을 남겼을까요?
정적인 구성 탈피한 바로크 회화
먼저 카라바조가 활동하던 시기 유럽 미술계는 어땠는지부터 알아볼게요. 비율과 균형을 맞추는 것을 미적 규범으로 여기던 르네상스 시기 회화를 거친 후, 이탈리아에서는 이러한 정적인 조화로움을 깨려는 시도가 일어납니다. 이 시도들은 화면을 역동적으로 구성하거나 인물의 과장된 동작을 표현하는 바로크 미술로 이어졌습니다.
<작품①>은 이탈리아 화가 루도비코 카라치(1555~1619)의 작품 ‘성 바오로의 회심’으로, 볼로냐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 예배당에 걸기 위해 1587년 제작된 것입니다. 말에서 떨어진 바오로가 땅에 쓰러져 있는 장면인데, 바오로 위로는 말이 두 앞발을 왼쪽으로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 보여요. 바오로는 왼팔과 왼다리를 사선 방향으로 쳐들고 있습니다. 화면 안에서 말과 인물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느껴지도록 배치한 것이죠.
하늘의 빛도 범상치 않아요. 먹구름을 뚫고 나온 노란색 빛이 보입니다. 이런 혁신적인 구도는 카라바조를 비롯한 바로크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기에 카라바조는 빛과 어둠의 대비까지 더해 더욱 극적인 연출을 담은 그림을 그리게 되죠.
몸짓·표정 생생하게 표현했죠
<작품②>는 카라바조가 그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입니다. 과일 속에 숨어있던 도마뱀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곱슬머리 소년의 손을 무는 장면이에요. 도마뱀이 있는 줄 모르고 무방비하게 있던 소년은 깜짝 놀라 몸을 피하며,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소년이 귀에 꽂은 장미와 꽃병 속 장미는 사랑에 빠진 소년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요. 그러나 사랑의 향기에 마냥 취해 있다가는, 예기치 않게 가시에 찔리거나 도마뱀에게 물려 아플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는 중간중간 고통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거죠.
<작품③>은 ‘성 토마스의 의심’입니다. 원작은 카라바조가 그렸는데,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추종자가 모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카라바조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장면을 그렸어요. 성서 속 이야기일지라도 신비롭고 모호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인간 세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습으로 재해석했지요. 예수의 제자인 토마스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스승인 예수가 죽고 난 뒤 부활했다는 기적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어요. 직접 상처를 확인하느라 눈을 어찌나 크게 떴는지 이마에 주름이 짙게 생겼어요. 손가락으로 상처를 직접 만져보기도 합니다.
카라바조는 <작품④> ‘이 뽑는 사람’을 통해 상상만 해도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지는, 지독히도 아픈 신체적 고통을 묘사했어요. 썩은 이를 뽑기 위해 도구를 입에 넣어 당기고 있습니다. 이를 뽑히는 남자는 한 손으로는 의자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허공을 휘젓고 있어요. 오른쪽 노인의 얼굴에 조명이 비치고 있어요. 그는 아픔을 같이 견디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요. 옆에서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도 몸에 힘이 들어간 듯 경직돼 있습니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매일 쏟아지는 이미지들을 보며 사는 현대인도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면 몰입하게 됩니다. 카라바조의 그림 속 인물들은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풍부한 감정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어 시선을 사로잡죠. 그런데 평소에 이미지를 볼 기회가 지극히 드물던 400년 전 관람자들은 어땠을까요. 생생한 고통이 전해져서 몸을 오그리고 눈을 찡그리느라 그림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던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