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요맘때에는 이웃과 마음을 나누는 따스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올해에는 아흔에 돌아가신 홍계향 할머니의 기부 사연이 가슴 뭉클하게 했지요. 그분은 재래시장 노점에서 일하고 지하철에서 청소해서 평생 모은 재산을 남김없이 이웃을 돕는 데 쓰라고 당부했어요. 생전에 할머니가 살던 주택이 최근 매각되어, 유언대로 어려운 이웃이 춥지 않게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됐습니다. 영하권 추위가 매섭지만, 그래도 성탄절 겨울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자선 소식 때문이겠지요.

물론 인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스크루지 영감’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스크루지는 19세기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캐럴’ 속 인색한 주인공입니다. 그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게 짜증 난다며 늘 투덜거립니다. 너나없이 들떠서 일은 제대로 안 하고 공짜 선물 받을 기대만 한다는 게 이유예요.

하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스크루지 영감처럼 크리스마스를 마냥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말 성탄절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만드는 이들이 훨씬 많습니다. 오늘은 이처럼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그림들을 살펴볼게요.

어둠 속에 빛을 밝힌 예수의 탄생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조르조네의 ‘목자들의 경배’(1505~1510년 추정). 컴컴한 동굴 바깥에 갓 태어난 예수가 누워있어요. /워싱턴 DC 내셔널갤러리

<작품 1>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조르조네(Giorgione·1477?~1510)가 그린 ‘목자들의 경배’입니다. 컴컴한 동굴 바깥에 갓 태어난 예수가 누워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이 지켜보는 가운데, 허름한 차림의 두 남자가 다가와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으며 아기를 축복하고 있네요.

성경에는 예수 탄생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구체적인 연도와 날짜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은 알 수 없지요. 고대 로마에서는 1년 중 하루 해가 가장 짧은 동지를 지나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이 새로 태어나는 날이라고 믿어 축제로 삼고 있었는데요. 예수의 탄생이 곧 태양의 탄생이라는 뜻에서, 4세기 교황 율리우스 1세가 이 축제일을 예수의 생일로 정했다는 설이 있어요. 예수야말로 암흑 같던 세상을 환하고 따스하게 만들어줄 구원자라고 암시한 거죠.

어린이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풍습

이탈리아의 니콜로 바라비노의 ‘선한 행위를 바탕으로 하는 자선’(19세기 중반). 성모 마리아가 손에 들고 있는 두루마리에 적힌 글자(카리타스)는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을 이웃에게 베푼다는 뜻이에요.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작품 2>는 자비로운 마리아를 그린 그림이에요. 이탈리아의 니콜로 바라비노(Nicolò Barabino·1832~1891)가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입구를 장식할 모자이크화를 만들기 전에 먼저 물감으로 그려본 것입니다.

성모는 지금 손에 두루마리를 펼쳐 들었는데, 거기에는 ‘카리타스’라고 적혀 있어요.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을 이웃에게 베푼다는 뜻입니다. 성모의 발아래에는 피렌체의 부유한 가문을 나타내는 장식들이 보이고, 오른쪽의 사람들은 그 가문을 각각 대표해서 온 것 같아요. 금화가 든 항아리도 넘어져 있는데, 부자들이 재산을 이웃에게 나누려고 이곳에 왔다는 의미일 겁니다.

성모의 옆에는 산타클로스처럼 흰 털이 달린 빨간 옷을 입고 빨간 모자를 쓴 분이 서 있어요.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은 성인 니콜라스에서 유래했는데요. 그는 고대 로마 시대에 미라(Myra·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의 주교였고, 어린이들과 친했다고 해요. 배고픈 아이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가난한 어린이의 집에 몰래 선물을 갖다주기도 하는 인자한 분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성인 니콜라스의 행적을 기리는 풍습이 성탄절의 전통이 되었지요.

니콜라스 주교의 빨간 주교복에 북유럽의 전설이 더해져서 사슴과 썰매를 탄 산타클로스의 이미지가 등장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네덜란드 등 유럽 지역에선 크리스마스와 별도로 12월 5~6일 니콜라스의 축일을 기념한다고 해요. 이때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신발 속에 누가 주는지 모르게 작은 선물을 넣어준대요.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얀 스테인의 ‘성 니콜라스 축제’(1665~1668년 추정). 그림의 중앙에 있는 소녀는 마음에 꼭 드는 인형을 받았는지 품에 안고 기뻐하고 있어요.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작품 3>은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얀 스테인(Jan Steen·1626~1679)이 그린 ‘성 니콜라스 축제’입니다. 얀 스테인의 그림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같이 이야기가 담겨있고 유머가 있는 게 특징입니다. 그림의 중앙에 소녀가 보이는데, 마음에 꼭 드는 인형을 받았는지 품에 안고 기뻐하는 표정이에요. 그런데 화면 왼쪽에 서 있는 소년은 선물을 아무것도 받지 못했는지 훌쩍거리고 있습니다. 정말로 착한 아이만 선물을 받은 걸까요, 아니면 숨겨진 선물을 아직 찾지 못한 걸까요?

전쟁 시기의 산타클로스

미국 화가 노먼 록웰의 ‘메리 크리스마스’(1942년 12월). 노먼 록웰은 2차 세계대전 등으로 힘들고 혼란스러워하는 미국 독자들이 이 그림을 보며 잠시라도 위로받기를 바랐어요. /노먼 록웰 박물관

<작품 4>는 산타클로스가 불쑥 신문을 뚫고 얼굴을 내민 모습입니다. 미국 화가 노먼 록웰(Norman Rockwell·1894~1978)이 그린 것이에요. 그는 미국 잡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의 표지 그림을 1916년부터 1963년까지 47년 동안 담당했어요. 이 기간 미국은 힘겨운 고비들이 있었는데요. 1929년에는 주식시장 붕괴로 경제 대공황이 시작됐고, 1939년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1945년까지 지속됐지요.

록웰은 혼란스러운 독자들이 자기 그림을 보면서 잠시라도 위로받기를 바랐어요. 이 그림은 1942년 12월 발간지의 표지예요. 산타클로스가 찢고 나온 신문지에는 마음을 어수선하게 하는 사건 소식들이 잔뜩 적혀 있습니다. 지금도 어떤 곳에서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노먼 록웰의 산타클로스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며 행복을 전해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