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al Museum

작년 12월 영국 정부는 자국의 우편 회사 ‘로열메일’의 모회사를 체코의 억만장자에게 매각했어요. 우리나라의 우체국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로열메일은 2013년 민영화됐고, 이번엔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소유가 되는 건데요.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외국 자본에 인수되더라도 거리와 관계없이 편지에 단일 요금을 매기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우편 서비스를 운영하기로 약속을 받았죠.

로열메일은 1516년 헨리 8세가 설립했어요. 처음엔 왕실과 관료들이 사용하는 국가 우편 시스템으로 시작했죠. 그러다 1635년 찰스 1세에 의해 일반 대중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됩니다. 로열메일은 근대적인 우편 시스템의 시초라 불리는데요. 1840년에는 세계 최초로 우표를 도입합니다. 이때 만들어진 우표가 ‘페니 블랙’(Penny Black)인데요. 1페니만 지불하면, 영국 본토 내 어디로든 우편을 부칠 수 있다는 증표였죠.

페니 블랙은 가로 1.9cm, 세로 2.2cm 크기의 직사각형 흑백 우표예요. 중앙에는 당시 영국 군주였던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를 넣었고, 아래쪽엔 우편 요금인 ‘ONE PENNY’가 흰색 글자로 적혀 있죠. 그리고 우표 가장자리엔 복잡한 패턴과 세밀한 장식을 넣어서 위조를 방지했어요. 우표 하단 가장자리엔 알파벳 코드가 적혀 있어, 우표가 어떤 시트에서 인쇄됐는지 알 수 있는 일종의 워터마크(식별 표시) 역할을 했답니다.

1850년 로열메일은 시트에서 우표를 한 장 한 장 쉽게 분리할 수 있도록 동그란 모양의 작은 구멍을 좁은 간격으로 뚫는 천공(穿孔) 기술을 도입했어요. 역사적 인물의 초상화, 천공 기술, 위조 방지 패턴 등 현대 우표를 구성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이때 확립됐습니다. 현재 영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명을 우표에 표기하지 않는데요. 영국 군주 초상화, 왕관 심볼, 고유의 패턴, ‘로열 메일’ 문구 등이 국가명을 대신하고 있답니다.

로열메일의 또 다른 업적은 우체통 보급입니다. 우체통이 처음 등장한 것은 17세기 프랑스 파리에서였지만 널리 쓰이진 않았다고 해요. 로열메일은 1853년 영국 해협의 채널 제도에 우체통을 처음 설치하고 이듬해부터 본토 전역에 촘촘히 우체통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우체국을 찾아가지 않아도 집 주변 우체통에 우편을 넣으면 지정된 시간마다 우편 배달부가 수거하는 시스템은 ‘우편 전성시대’를 열었죠.

영국을 상징하는 물건 중 하나인 빨간색의 철제 원통형 우체통 역시 로열메일이 개발한 디자인이랍니다. 오직 영국식 우체통에만 존재하는 요소가 바로 왕관 심볼과 군주 마크입니다. 라틴어로 된 군주 마크를 통해 우체통이 세워진 시기를 유추할 수 있지요. 지난 2022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군주 마크가 전체 우체통의 절반 이상이라고 해요. 엘리자베스 2세를 이어 즉위한 찰스 3세의 군주 마크가 새겨진 우체통은 작년 7월 처음 등장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