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1970년작 '진진묘'(41×32㎝). 아내를 그린 것이다.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아내는 부처의 모습이었다. 불경을 읽고 있던 아내를 화가 장욱진이 그림 ‘진진묘’(眞眞妙·1970)로 남긴 이유다.

‘진진묘’ 이순경(102) 여사가 18일 오전 입적했다. ‘진진묘’는 이 여사의 법명이다. 맏딸 장경수(77)씨는 “아프지 않으셨고 어제 저녁도 맛있게 잡수셨는데 오늘 일어나지 못하셨다”며 “화가 장욱진과 가족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는 1997년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해 말년까지 남편의 예술 세계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역사학자 이병도 선생의 장녀이기도 하다. 밥 굶는 환쟁이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모친의 반대에도 1941년 장욱진과 결혼식을 올렸다. 가난은 필연이었고, 1953년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 책방 ‘동양서림’을 차려 20년 넘게 운영하며 남편과 5남매를 건사했다. 술집 주인들이 장욱진이 달아놓은 외상값을 받으러 곧잘 드나들곤 했다. 사람 좋고 경제 관념 없던 장욱진은 그런 아내의 뒷바라지 덕에 평생 자유로이 화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2019년 백세를 맞아 회고록 ‘진진묘’(태학사)를 펴냈다. “내가 불교 공부로 마음을 다스리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지를 나도 모르겠다”고 적었을 만큼 지난한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보살처럼 자비로운 고백. “예술가의 아내가 받는 선물은 뭐니 뭐니 해도 예술가의 성공이고 또 훌륭한 작품을 품에 안는 거겠지.” 빈소 분당서울대병원, 발인 20일 9시. (031)787-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