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새’라는 애칭으로 한국 여자 배구계 전설로 통했던 조혜정(71) 전 GS칼텍스 감독이 30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 전 감독은 키가 164㎝로 배구 선수로는 아주 작은 축이었지만 각고 노력 끝에 제자리높이뛰기(서전트 점프) 68㎝, 러닝 점프 72㎝에 이르는 탄력을 바탕으로 종횡무진 코트를 누볐다. 서울 숭의여고 시절인 1970년 국가대표로 뽑혀 7년간 태극 문양을 달고 국제 무대에 이름을 떨쳤다. 당시 다이마쓰 히로부미(大松博文·1921~1978) 일본 여자 배구 대표팀 감독이 그가 뛰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작은 새(Flying Little Bird)’란 표현을 썼고 그 뒤로 조 전 감독을 상징하는 말처럼 회자됐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조 전 감독을 필두로 한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3~4위전에서 헝가리를 세트 점수 3대1로 누르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1세트를 내준 뒤 거둔 역전승.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한국은 당시 평균 신장이 7~8㎝ 큰 헝가리를 맞아 투혼을 떨쳐 승리를 거뒀다. 조 전 감독은 앞서 1973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1회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컵에서 한국을 3위로 이끌어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등 세계적 선수로 입지를 굳힌 상태였다.
조 전 감독은 고교 졸업 후 국내 실업팀 국세청과 대농(이후 미도파)에서 활약했으나 무릎 부상이 심해져 1977년 24세에 일찍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현대건설 코치를 거쳐 1979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2년간 선수 겸 코치로 활동했다. 한국 여자 배구 선수 해외 진출 1호였다. 1981년 한국 비치발리볼연맹 사무국장을 지냈고 2010년 GS칼텍스 감독을 맡아 한국 프로 스포츠 첫 여성 감독이란 기록도 남겼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함께 뛴 유경화 대한배구협회 유소년이사는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점프 연습을 하던 선배 모습이 기억난다. 배구를 너무나 사랑한 선배님을 잃었다”고 했다.
조 전 감독은 숨지기 전 평생을 함께한 배구에 작별 인사를 하는 유언 편지를 남겼다. 편지에서 그는 “배구야,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때가 열세 살 중학교 시절이었으니, 우리의 인연은 벌써 반세기가 훌쩍 지나 60년이 다 돼가는구나.... 때론 내가 너를, 또 가끔은 네가 나를 힘들게 한 적도 있었지. 그렇게 이어온 끈질긴 인연이 오늘에 이르렀네. 그런데 배구야, 이제 난 너와 더 이상 친구를 할 수가 없게 됐단다... 수많은 내 친구 중 너에게만은 직접 이별 통보를 하는 게 너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해서 고통을 참으면서 이 편지를 쓴단다… 170㎝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키로 배구도 했는데 이것 하나 못 이기겠어라며 호기롭게 맞서 싸웠지만, 세상에는 안 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불과 며칠 전이야... 배구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더 이상 너의 친구로 남아 있을 수 없단다... 너를 만나 참으로 즐거웠고, 행복했어. 몬트리올에서, 이탈리아에서 너와 함께한 여행은 내 인생의 꽃이었어. 대한민국 프로 무대에서 너와 함께한 그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데이트였어... 고마웠던 배구야, 안녕!”이라고 썼다. 대한배구협회는 조 전 감독에게 특별 공로패를 추서하기로 결정했다.
조 전 감독은 1981년 조창수 프로야구 전 삼성 감독 대행과 결혼해 딸 조윤희·윤지를 뒀다. 두 딸은 골프 선수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뛰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1월 1일 오전 6시 3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