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아이를 찾습니다.’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현수막의 문구다. 김성민(39) 감독은 장기 실종 아동 문제에 7년간 매달린 끝에 장편 다큐멘터리 ‘증발’을 완성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1년 이상 장기 실종 아동은 660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20년 이상이 560여 명이다. TV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종종 다뤘지만 장편 다큐멘터리로 이 주제를 조명한 건 사실상 국내 처음이다. 12일 개봉을 앞둔 ‘증발’은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장편상과 DMZ 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김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다닐 적부터 저신장(低身長) 장애를 주제로 학교 과제용 작품을 촬영하면서 다큐 감독의 꿈을 키웠다. 그는 “세상에 숨은 사연들을 감독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전달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면서 “당시 어린 마음에도 ‘다큐멘터리는 재미없다’거나 ‘극장 개봉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졸업 후 백화점 계열사에 취직했지만 1년 만에 퇴사했다. 그 뒤 시청각 중복 장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달에 부는 바람’(감독 이승준)의 조연출로 2년간 일했다.
조연출 생활이 끝나갈 무렵, 고민이 커졌다. 그는 “독립할 시기는 다가오는데 막상 하고 싶은 이야기는 떠오르지 않아서 괴로웠다. ‘재능이 없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진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절박한 심경으로 주제를 찾다가, 친구들과 함께 실종된 지인을 찾기 위해 다녔던 경험을 떠올렸다. 김 감독은 “성인 실종자의 가족들도 극심한 고통에 빠지는데, 실종 아동 가족들의 마음이 오죽할까 싶었다”고 말했다.
실종아동전문기관에 문의한 끝에 20년째 딸 준원이를 찾고 있는 아버지 최용진(58)씨를 만났다. 지난 2000년 당시 여섯 살이었던 준원이는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뒤 동네 놀이터에 갔다가 실종됐다. 가족들은 서울 중랑구에서 이사도 하지 않고, 집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은 채 백방으로 아이를 찾는다. 아버지 최씨가 꼼꼼하게 신고 제보 등을 적어 놓은 노트만 5권이다. 김 감독은 “준원이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과묵하면서도 강인한 분이셔서 깜짝 놀랐다”면서 “기나긴 세월을 어떻게 견뎠는지 궁금증이 커지면서 그 사연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종 가족을 촬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상을 찍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처음에는 실종 사건에 초점을 맞췄지만, 촬영을 거듭할수록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이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장기 실종 아동의 가족들은 이혼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 감독은 “실종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지만, 남은 가족들의 관계에도 천천히 균열이 생기면서 결국 무너지거나 해체된다는 점에서 더 큰 후유증을 낳는다”고 말했다.
기술적으로 하드디스크 4테라바이트(TB)에 이르는 촬영 분량을 편집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2017년 서울지방경찰청 장기실종수사팀에서 준원이 사건의 재수사에 들어갔다. 김 감독은 “촬영을 끝내면 준원이를 찾는 일도 그만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때문에 경찰 수사 과정까지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팀과 함께 순천과 목포, 안동 등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추가 촬영을 거듭했다.
다큐멘터리에는 세 가지 집념이 담겨 있다. 20년째 준원이를 찾고 있는 가족, 7년간 촬영한 다큐 제작진, 4년째 재수사 중인 수사팀의 집념이다. 촬영 과정에서 김 감독은 다른 실종자들이 기적적으로 가족과 재회하는 사연도 접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실종 아동 문제에 따뜻한 관심을 보여준다면 아무리 실낱같더라도 희망은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