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치른 미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한국계로는 세 번째로 당선이 확정된 공화당의 미셸 박 스틸(가운데) 당선인이 캘리포니아 지역구 유권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10일 본지 인터뷰에서 “미국과 한국 정부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셸 박 스틸 홈페이지

미셸 박 스틸(65·한국명 박은주) 연방 하원의원 당선인은 11일(현지 시각)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저 혼자서는 올 수 없었던 길을 한인 커뮤니티와 같이 온 것"이라며 “그동안 도와주신 한인분들께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제48선거구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스틸 당선인은 현역인 할리 루다 의원을 ‘초접전’ 끝에 물리치고 당선됐다. 스틸 당선인이 19만9760표, 루다 의원이 19만2012표를 얻어 불과 7748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3일 선거 후 개표에만 일주일이 걸렸다.

스틸 당선인은 "어제 마침내 승리 소식을 듣고 지난 18개월간의 선거 운동이 드디어 끝났구나 안도했다”며 “연방 하원의원이 되었으니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 사이에서도 어떤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 승리로 스틸 당선인은 워싱턴주 제10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메릴린 스트리클런드 당선인과 함께 연방 하원에 입성하는 ‘제1호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되었다. 여전히 개표가 진행 중인 캘리포니아 제39선거구에서 영 김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면 세 여성이 나란히 연방 하원의원이 된다.

스틸 당선인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중·고교를 일본에서 다녔다. 일본여자대학 1학년을 마치고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해 캘리포니아주 페퍼다인대를 졸업했다. 이민 1세로서의 경험은 그가 정치를 시작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줬다. 스틸 당선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미국 이민을 오신 어머니는 영어를 전혀 못 하면서 혼자 옷가게를 하셨다"며 “그러다가 1980년대 초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위원회(BOE)에서 큰 세금을 부과 받았지만 이의를 제기할 힘이 없어서 받아들여야만 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그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납세자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겪으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커졌다. 스틸 당선인은 지역 정치에 참여해 LA시 소방감독위원, 공항감독위원, 아동복지국감독위원, 한·미공화당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1~2004년 백악관 아시아·태평양계 자문위원을 지냈고,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백악관 아시아·태평양계 공동 자문위원장이었다.

미셸 스틸(한국명 박은주) 연방 하원의원 당선인. 그는 11일(현지 시각)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지역구 주민들을 위해 세금 인하와 규제 철폐 등으로 소상공인을 돕는 의정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출직 출마의 기회는 2006년 찾아왔다. 남편인 숀 스틸 변호사가 “조세형평위원회에 공석이 생겨 선거가 열린다더라”고 말한 것이다. 1981년 결혼한 남편은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의장을 지낸 지역 정계의 주요 인사다. 스틸 당선인이 모친의 경험을 얘기하며 “조세형평위는 납세자를 괴롭힐 수도 있는 곳이지만 내가 한다면 소상공인을 정말 잘 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자, 남편이 “그럼 당신이 출마해 보라”고 했다.

스틸 당선인은 그 선거에서 이겼고, 조세형평위원으로서 소상공인에게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세금 환급액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5500여 소상공업체에 최고 5만달러 이상의 사전 납세액을 환급해 주면서 그는 ‘납세자를 위한 투쟁가(tax-fighter)’가 됐다. 2014년에는 오렌지카운티의 살림살이를 감독하는 집행관위원회(Board of Supervisors) 선거에도 출마해 당선됐다.

스틸 당선인은 “연방 하원이 돼서도 지금까지처럼 지역구 주민들을 위해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철폐하며 소상공인을 돕는 의정 활동을 하고 싶다”며 “인턴십 등을 통해 정치에 관심 있는 젊은 한인들에게도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