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

IT 스타트업인 크래프트 테크놀로지스의 김형식 대표가 수익률 경쟁에서 제친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5월 뉴욕증권거래소에 토종 ETF(상장지수펀드) 2종을 상장시켰다. ETF란 특정 주가 같은 지수나 자산 가격에 따라 움직이도록 설계된 상품으로, 주식처럼 상장되어 거래된다.

지난해 5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인공지능 상장지수펀드를 상장시킨 김형식 크래프트 대표가 당시 기념식 사진을 배경으로 지난 12일 포즈를 취했다. 그는“기술로 정면 승부하기 위해 미국을 택했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미국 월가의 ETF 시장은 규모가 4조7000억달러(약 5210조원)나 되는 세계 금융의 핵심이다. 전 세계 ETF 시장 규모가 7조달러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미국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2300여 개 글로벌 ETF 상품들이 능력을 겨루는 ‘쩐의 전쟁터’에 김 대표는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물론 처음엔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신생 스타트업이 버틸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미국 증시는 글로벌 자본시장을 대표하는 곳이잖아요. 우리가 만든 ETF 실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국 데뷔 이후 18개월이 지난 지금, 간판 상품인 ‘크래프트 AI인핸스드 US라지캡 ETF’는 올 들어서만 37%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미국 대형주 지수에 투자하는 상품인데, 글로벌 운용사들의 비슷한 상품이 12~18% 정도의 수익률을 낸 것에 비하면 거의 2배 성과를 낸 셈이다. 지난 2월엔 고배당 상품에 투자하는 3번째 ETF도 월가에 내놨다.

신생 스타트업 상품이지만 수익률이 좋다는 소문이 나자, 전 세계 연기금들이 “고수익 비결이 뭐냐”면서 문의를 해오기 시작했다. 그의 대답은 AI(인공지능)였다. 김 대표는 “자체 개발한 AI가 배당, 시가총액, 영업이익 등 수백 개의 요인을 정밀하게 계산한 다음, 남들보다 초과 수익을 낼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찾아낸다"고 말했다.

서울과학고, 서울대 전기공학부 출신인 김 대표는 난해한 수학 문제 풀기를 좋아하던 공대생이었다. 그러다 병역 특례로 일하게 된 중소기업에서 주식의 세계에 눈뜨게 됐다.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서비스 개발을 맡게 됐는데 그때 처음으로 주식을 접하게 됐죠. 대학원 졸업 후에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 매매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변동성을 이용한 선물·옵션 매매를 했습니다. 나이에 비해 큰돈을 벌었죠." 그러다 지난 2016년 회사를 창업하고 AI를 활용한 자산 관리 상품 개발에 도전했다.

김 대표는 “스스로 학습을 거듭한 AI는 방대한 경우의 수를 좁혀서 해답을 찾아낸다”면서 “수백만 개의 복잡한 요인(팩터)을 함수로 만들고, 그 결과에 따라 투자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AI가 왜 이렇게 골랐을까 하는 것도 있지만 그대로 운용한다.

그는 “AI가 적중률 100%인 주식의 신은 아니겠지만 코로나와 같은 예외적인 이벤트가 터졌을 때 AI의 대응력은 굉장히 빠르다”면서 “자산 관리 시장에서 사람보다 AI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계속 혁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