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과연 이렇게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책에 나온 대로 하다 보니 되더라고요. 그것도 친환경적으로!”

조선 실학자의 비밀 조리법 1700여 개가 20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임원경제연구소가 번역해 풍석문화재단이 최근 4권 1368쪽 분량으로 출간한 서유구(1764~1845)의 ‘정조지(鼎俎志)’다. 번역에만 그치지 않고 음식 536종을 원문의 비법 그대로 조리해 사진으로 실었다.

전북 전주 서유구 기념관 ‘자이열재’에서 만난 정정기(49) 박사와 음식 복원에 참여한 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 곽미경(57) 소장, 곽유경(53) 복원팀장은 “앞으로도 차근차근 풀어야 할 방대한 음식의 보고(寶庫)”라고 했다.

전북 전주의 서유구 기념관인 ‘자이열재’에서 서유구 ‘임원경제지’ 중 음식 요리 백과사전 ‘정조지’의 번역과 음식 복원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정조지’ 레시피대로 재현한 음식들 앞에 앉아 있다. 왼쪽부터 임원경제연구소 연구원 정정기 박사, 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 곽유경 복원팀장, 곽미경 소장.

서유구가 쓴 백과사전 ‘임원경제지’ 16지(志) 중에서도 ‘정조지’는 한·중·일 1748가지 음식 조리법을 소개한 책이다. ‘떡’만 해도 과일떡, 무떡, 불떡, 아랍부꾸미 등 97종, ‘만두’는 김치, 꿩, 숭어, 오리, 양, 게, 참새, 연밥 등 28가지다.

“번역을 하면서 한학만으로는 절대 안 되는 대목이 많았다”는 정 박사는 전통주 빚는 법을 직접 배웠다. 책에 나온 음식을 연구해 ‘조선셰프 서유구’란 책도 낸 곽 소장은 “조선 시대와 달리 이제는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가 많았는데, 그걸 구해 써 보니 재료 본연의 특성이 살아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연꽃 열매가 들어있는 받침 부분인 연방(蓮房)을 사용해 ‘연방 만두’를 재현하고는 무릎을 쳤다. “서유구 선생 말대로 연방 밑을 잘라 스펀지 같은 속을 파내고, 잘 다져 간장 양념을 한 가자미 살을 채웠죠. 김이 폭폭 오르는 작은 시루에 쪄내 뚜껑을 열어봤더니… 운무 속에 떠 있는 신선 마을 같더라고요.”

전통 조리 도구도 다시 보게 됐다. 오븐 역할을 대신하는 질화로는 얇지만 열 효율이 좋고, 가스레인지나 인덕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했다. 나무를 쓸 때도 장작이냐 섶나무냐에 따라 화력이 다 달랐다.

‘정조지’ 곳곳에서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드는 ‘미식(美食)의 스킬’을 제시한 것도 눈에 띈다. ‘돼지를 구울 때 냉수 한 동이를 옆에 뒀다가 굽자마자 물에 담그기를 10여 차례 반복한 뒤에 기름 간장과 양념을 바르고 다시 구우면 매우 연하고 맛있다’는 식이다.

정 박사와 곽 소장은 “‘정조지’는 그 당시의 식생활을 보여줄 뿐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미래 식생활의 청사진을 제시한 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 환경에서 있는 것을 찾아 소박하더라도 제대로 맛있게 먹고 건강해지자는 얘기죠. 여기서 계절과 풍토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임원경제연구소는 지난 12일엔 ‘임원경제지’ 중 건강·양생 백과사전인 ‘보양지’ 3권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