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별세한 산정 서세옥 화백. 생전의 그는 "사람이 어머니 배 속에서 나와 탯줄을 끊으면 독립체가 되는 것처럼 화가가 그림에 서명한 순간 더는 화가의 소유가 아닌 사회의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한국화 거장 산정(山丁) 서세옥(91)씨가 숙환으로 지난달 29일 별세한 사실이 3일 뒤늦게 알려졌다. 대한민국예술원은 이날 “코로나 사태로 방역 차원에서 가족장으로 장례를 마친 후 별세 소식을 알리게 됐다”고 밝혔다.

1929년 대구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미대 입학 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으며 화단에 데뷔했다. 동양화가 고수하는 옛 틀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 화법인 ‘수묵 추상’을 창출했다. 생전의 그는 “내 그림은 동·서양화를 합친 하나의 장르”라며 “다들 서양 논리에 매달릴 때 나는 내 것을 지키며 묵묵히 걸었기에 고독했다”고 말한 바 있다.

1960년대 지필묵 실험을 위한 전위적 작가 단체 ‘묵림회’를 결성했다. 1970년대 이후 묵선과 여백으로 인간의 형상에 기운생동을 불어넣은 ‘사람들’ 연작을 선보였다. 눈·코·입 묘사 없이 최소의 선으로 인간의 형상을 드러내는 그의 대표작이다. 사람을 화두로 그리는 이유에 대해 그는 “가장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대 미대 교수로 수십 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1978년에는 성북구 무허가 천막에 사는 동네 학생들을 돕기 위해 운보 김기창 등 동료 화가 33인과 장학단체 ‘성북장학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서울대 미술대학장, 한·중 미술협회 초대 회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58), 건축가 서을호(56)씨가 그의 아들이다. 고인은 창덕궁 내 연경당(演慶堂)을 본떠 서울 성북동에 한옥을 지어 가족과 기거했다. 그가 지은 집이 두 아들의 작품 세계에도 큰 지붕을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