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교수 연구실인데, 정면에 떡 하니 놓인 건 전자피아노였다. 컴퓨터 모니터엔 악보가 둥실 떠 있었다. 물론 책장엔 ‘기업재무’ ‘회계원리’ 같은 책들이 빽빽했다. “퇴근 후에 여기서 종종 연주합니다. 밤늦게까지 앉아서 곡을 쓰기도 하고요.” 이화여대 경영대학장 김효근 교수가 말했다.
김 교수는 ‘작곡하는 경영학과 교수’. 경영정보시스템을 전공, 1992년부터 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음대에서 화성학과 대위법 수업을 함께 들었다. 가곡 ‘눈’으로 제1회 MBC 대학가곡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후 경영학 연구와 작곡을 병행했다. 2014년 그가 지은 가곡 ‘내 영혼 바람 되어’는 유튜브 조회수만 650만 회가 넘는다. 최근 이 곡은 JTBC ‘팬텀싱어’와 MBN ‘로또 싱어’ 등 방송에도 나왔다.
40년 넘게 교수이자 예술가로 지내며 안타까운 사례를 여럿 목격했다. 음대를 졸업하고 비싼 돈 들여 유학을 다녀오고도 국내에서 귀국 독주회 한 번 열면 끝. 그마저도 자기 돈 들여 공짜 표 뿌리고 “저 객석을 어떻게 다 채우나” 하는 걱정에 잠 못 드는 게 우리나라 음악가들의 현실이라고 했다. 우수한 예술 인력도, 즐기고픈 사람도 많은데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 정확한 ‘매칭’이 안 되는 게 문제였다.
경영학 마인드를 예술 분야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가 오는 1월 공식 론칭하는 ‘아트 링커(artslinker.com)’다. AI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 플랫폼 ‘아트링커’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3년 동안 개발비 14억원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AI 기술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예술가와 소비자를 연결해준다. 이대 경영예술연구센터와 호서대 AI연구센터, IT 기업 ‘위즈컨’이 힘을 모았다. 설문조사로 가입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페이지 방문 기록 등을 빅데이터로 저장해 취향에 맞는 예술가를 보여준다. “공급자와 수요자를 이어주는 플랫폼이란 점에서 ‘에어비앤비’나 ‘배달의 민족’과 비슷하죠. 예술계의 ‘에어비앤비’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김 교수는 “이제 예술가들도 스스로를 ‘1인 기업’이자 ‘브랜드’로 여겨야 한다”고 했다. 작가별 아트 채널을 제공해 저마다의 음원이나 작품, 영상 등을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이를 본 소비자들이 플랫폼 안에서 공연·전시의 예매와 결제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음악·미술·영상·디자인·사진·뮤지컬·연극 등 100여 종 예술 장르가 반영돼 있다. 김 교수는 “코로나로 힘겨워하는 예술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음악 열병을 앓아본 사람은 음악이 주는 위로를 알죠. 예술가들이 경제적 자립과 자아실현을 둘 다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