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하순, 전남 구례군 문척면 금정리. 오봉산을 오르던 이원규 시인이 무덤가에 핀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이 꽃은 남바람꽃이 아닌가!” 꽃은 시들었지만, 꽃잎이 남아 있었다. 지리산 자락 구례에서 꼭 만나고 싶었던 꽃이었다. 1942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서식지가 구례였기 때문이다. 이듬해 핀 꽃을 보고 이씨는 환경운동가 우두성씨에게 알렸다. 국립수목원 손성원 연구사는 남바람꽃이 맞는다고 확인했다. 이씨는 “최초 보고된 서식지에서 다시 발견된 것이라 얼마나 설레고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이씨와 우씨를 비롯한 다섯 명이 ‘남바람꽃보존위원회’를 만들었다. 이씨는 지리산 자락에서 23년째 살고 있는 ‘지리산 시인’. 우씨는 대를 이어 지리산 환경 운동을 해오고 있다. 그의 부친 고 우종수씨는 지리산을 우리나라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도록 군민(郡民) 운동을 벌인 인물이다. 야생화 연구자인 정연권씨도 합류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 앞산처럼 오르내린 지리산에 서식하는 야생화를 세세히 꿰고 있다. 이씨에게 사진을 가르쳐준 김인호 시인, 구례에서 환경 운동을 벌여온 윤주옥씨도 참여했다.
우 대표는 “고려대 교수를 지낸 구례 출신 박만규씨가 남바람꽃을 국내에서 처음 발견했다”며 “박 교수가 매천(梅泉) 황현 선생이 구례에 세운 민족사립학교 ‘호양학교’ 출신인 인연을 생각해 보면, 구례 정신의 맥을 잇자는 뜻도 담긴 것 같다”고 했다.
남바람꽃은 1949년판 식물명칭집에 처음 등재됐지만, 이후 실제 관찰되지는 못했다. 2007년 제주에서 다시 발견된 이후 2009년 순창, 2011년 함안에서 서식지가 확인됐다. 2012년 ‘희귀식물 위급종’으로 지정됐고, 지난해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남바람꽃으로 등재되었다. 보통 4월 초부터 중순까지 꽃이 핀다.
싱그런 초록빛 속에서 한 올 한 올 피는데, 화려하지 않은 봄 색깔을 보인다.
정씨는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2015년 무렵부터 서식지가 훼손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씨 등 5명은 지난달 31일 군과 함께 서식지 일부(60평)를 사들였다. 이 서식지에는 복수초, 금낭화, 현호색, 산자고 등 야생화 20여 종이 함께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