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 시각)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미국 우주비행사 마크 반데 하이와 러시아 우주비행사 올렉 노비츠키, 표트르 두브로프를 태운 우주선이 국제우주정거장(ISS)을 향해 발사된다. ISS행 65번째 원정인데 미 항공우주국(NASA)은 “유리 가가린의 인류 최초 우주비행 60주년을 사흘 앞두고 펼쳐지는 비행”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유리 가가린의 우주 비행은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과 협력으로 이어졌다. 9일 ISS로 출발하는 러시아 비행사 표트르 두브로프, 올렉 노비츠키와 미국 비행사 마크 반데 하이(왼쪽부터). /NASA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행정부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지만, 두 나라 우주비행사들이 유리 가가린의 이름으로 우의를 다지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유리 가가린의 역사상 첫 유인 우주비행 60주년을 앞두고 전 세계에서 축하 행사가 열리고 있다.

1961년 4월 12일 키 157㎝의 아담한 체구를 가진 스물일곱 살 소련 청년 유리 가가린은 우주선 보스토크 1호에 몸을 싣고 108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우주비행을 마치고 귀환했다. 전 세계의 영웅이 됐고, 인공위성(스푸트니크 1호)에 이어 유인 우주비행까지 선수를 빼앗긴 미국을 자극해 미·소 우주 경쟁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코로나 대유행 상황 속에서도 대규모 기념 행사를 개최한다. 러시아연방우주국과 국제우주비행사연맹 공동 주최로 오는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국제 우주탐사회의(GLEX 2021)이다.

러시아에서 코로나 이후 처음 열리는 대면 국제행사로, 가가린 이후 60년 동안 인류가 우주 탐험을 통해 이룬 성취를 돌아보고 현재 진행 중인 미국·중국·아랍에미리트의 화성 탐사 성과를 격려하는 행사도 열린다.

유리 가가린 /AFP 연합뉴스

러시아 외 다른 나라들도 기념 행사를 준비한다. 영국행성협회는 12일(현지 시각) 가가린 비행 60주년 기념 행사로 인류의 태양계 연구 성과를 총정리하는 심포지엄 ‘달을 넘어서(beyond the moon)를 개최한다. 같은 날 호주 멜버른에서도 인류 첫 우주비행을 기념하는 라이브 방송 ‘우주에서의 60년(60 years in space)이 진행된다. 전 세계 우주 관련 기관과 학회들은 매년 그의 탐사일을 전후해 유리의 밤(Yuri’s Night)이라는 이름으로 동시다발적인 축하 행사를 여는데, 올해는 6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쳐질 전망이다. 한국의 ‘유리의 밤' 행사는 10일 오후 3시부터 강원도 화천군 조경철 천문대에서 열린다.

가가린은 지구 귀환 뒤 20여 나라를 방문하며 소련 외교 사절로 활약했다. 당시 방문국인 스리랑카에서는 지난 6~8일 가가린의 우주비행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됐던 1000여장의 기념우표와 포스터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에서도 부산국제교류재단 주관으로 12일부터 일주일간 ‘유리 가가린 우주비행 60주년 기념 러시아 영화·다큐주간’을 열고 그의 생애를 다룬 미개봉작 5편을 온라인 상영한다.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탱크’로 유명한 글로벌 게임 제작사 워게이밍은 전 세계 누리꾼들이 게임 형식으로 가가린의 우주비행을 축하할 수 있도록 한 이벤트 ‘투 더 스타스’를 개설해 오는 21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우주비행만큼 극적이었던 가가린의 생애도 재조명되고 있다. 가가린은 어린 시절 독일군에 점령된 고향 마을 상공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보면서 비행사에 대한 꿈을 키웠고, 소련의 유인 우주비행 프로젝트 최종 후보생 20명에 선발됐다. 당시 그에 대해 공군 의무관은 “기억력이 환상적이며, 주변 환경에 대한 집중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보스토크 1호의 조종석의 규모가 협소해 상대적으로 단신이었던 그가 유리했다.

소련 정부는 인류 역사를 새로 쓴 가가린의 두 번째 우주비행 투입을 꺼려 훈련 교관 일을 맡겼다. 혹여 사고로 목숨을 잃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가린은 여러 차례 비행사 복귀에 대한 열망을 밝혀 1967년 소유즈 1호 백업 요원으로 선발됐다. 하지만 소유즈 1호 비행사 블라디미르 코마로프가 지구 귀환 중 사고로 사망하자, 소련 당국은 가가린이 비행 교관과 동행할 때에만 훈련용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 조치도 그의 요절을 막지 못했다. 1968년 3월 27일 가가린은 교관과 함께 미그 15기 훈련 비행을 하다가 기체 추락으로 34세로 숨졌다. 구체적인 죽음의 경위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