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갈 땐 가볍게, 내려올 땐 무겁게.’
지난달 28일 서울 용마산 등산로에서 4명의 청년을 만났다. 약 2시간 동안 산을 오르내린 이들. 한 손에는 집게가, 다른 손에는 커다란 쓰레기봉지가 들려 있었다. 슬로건 그대로 ‘무겁게’ 하산하는 길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더 힘들지만 매주 산행을 포기하지 않는 ‘클린 하이커스(Clean Hikers)’다.
“처음엔 운동으로 등산을 시작했는데, 어떤 사람이 정상에서 쓰레기를 주우면서 내려오는 것을 봤어요. ‘나도 저렇게 해봐야겠다’ 생각하고 ‘클린 하이킹’을 시작하게 됐죠.” 레고 브릭 아티스트인 진형준(32)씨가 모임에 나오게 된 이유다. 리더인 김강은(31)씨를 주축으로 2018년부터 활동한 ‘클린 하이커스’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전국 각지의 청년 1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왕 하는 등산인데, 쓰레기도 좀 주우면 좋겠더라고요. 같이할 사람들이 있으면 더 힘이 나기도 하고요.” 작년 4월부터 참여한 회사원 김연실(33)씨도 같은 얘길 했다. ‘등산으로 건강도 챙기고 환경도 살리자’는 선한 마음이 클린 하이커스를 3년 넘게 이끈 원동력이었다. 소방공무원이 꿈인 강문희(28)씨는 이날 아침에 KTX를 타고 대구에서 왔다고 했다. “혼자서도 산을 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워요. 이제는 저의 주변 사람들도 ‘클린 하이킹’을 알게 됐죠. 이렇게 ‘다단계’처럼 확장해가는 거죠!” 강씨의 말에 다른 회원들도 “맞아, 우리 좀 다단계 같아”라며 웃었다.
코로나 이전엔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함께 산을 오르며 쓰레기를 주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대대적인’ 청소 작업은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4명씩 조를 짜서 산행을 하고 있어요. 소셜미디어로 신청받는데, ‘꼭 하고 싶다’고 애절하게 부탁하는 사람이 많아요.” 코로나도 클린 하이커스의 ‘선한 영향력’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게 김강은씨의 설명이다.
이날 산행에서 회원들은 담배꽁초, 물티슈, 나무젓가락, 귤껍질, 스티로폼 접시 등 다양한 쓰레기를 한가득 주워왔다. ‘아직도 산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목소리로 “당연하죠. 별별 쓰레기가 다 나와요. 속옷을 주울 때도 있는걸요”라고 했다. 등산로에 버리면 그나마 양반이다. 안 보이는 나무 틈새 사이에 과자봉지를 ‘정성껏’ 접어서 빠지지도 않게 꽉 끼워놓는 사람들이 적잖다고 한다.
“산을 ‘내 집처럼 사용하자’는 말도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내 집이야 마음대로 써도 되지만 산은 내 집이 아니니까 더 아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연실씨가 한숨 쉬며 말했다.
주워온 쓰레기는 등산로 입구에서 분리 수거한다. 쓰레기봉지를 들고 지나가면 “아니고, 젊은 친구들이 좋은 일 하네!”라며 쓰레기 처리를 도와주는 상인들도 있다. 정 처리가 어려울 때엔 가방에 넣어 집에 가져가기도 한다.
이들의 목표는 ‘쓰레기를 주우러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우리의 활동을 보고 ‘나도 봉지 하나 정도 채워볼까’ ‘쓰레기 10개만 줍고 내려오자’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클린 하이킹이 퍼지다 보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줍는 사람도 없게 되지 않을까요?” 네 사람이 해맑게 웃으며 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