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진작 만나서 신북방 정책과 양국 우호 협력,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빨리 코로나가 잦아들었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29일 본지와 화상으로 만난 할트마 바툴가(58) 몽골 대통령의 첫마디였다. 그는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를 지낸 스포츠 영웅이자 사업가 출신으로 국민적 인기 속에 정치에 입문했고 국회의원과 장관 등을 거쳐 2017년 7월 대선에서 승리하며 취임했다. 재임 중 경제 개발에 주력하면서 몽골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부존 지하 자원 등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대외 영향력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비슷한 시기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는 중점 외교 노선인 신북방 정책의 핵심 협력 국가로 위상이 한층 격상됐다. 지난해 코로나 대유행으로 국가 간 왕래가 급감한 상황 속에서도 수교 30주년을 맞아 두 나라에서는 다양한 기념 행사가 열렸다. 바툴가 대통령은 연간 20만명 규모까지 늘어난 양국 간 인적 교류 규모를 언급하며 “포괄적 동반자 관계인 한국은 중요한 이웃이면서 경제 파트너”라고 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성공적인 국민 외교(people’s diplomacy)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힘든 시기에 몽골인들이 한국에서 번 돈이 고국 가족들의 생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잊지 못할 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을 통해 시장경제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한국 국민과 정부에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바툴가 대통령은 “세계 10위권의 지하 자원 부국인 몽골과 정보·기술 선진국인 한국이 각자의 장점과 잠재력을 결합하면 양국 모두에 이익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몽골은 2018년 6월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뻔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미·북 정상회담 장소 후보지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회담 장소는 최종적으로 싱가포르로 결정됐지만, 한반도 정세에 관해 관심이 컸던 바툴가 대통령이 수도 울란바토르를 회담 장소로 제안해서 관심을 모았다. 바툴가 대통령은 몽골 유도협회장 시절부터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던 친한파 정치인이다. 그러면서 2014년에는 산업농업부 장관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남북한 모두와 인연이 있는 셈이다.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바툴가 대통령은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해결을 동시에 강조했다. 그는 “동북아 평화 정착을 위해서 한반도 정세 안정이 중요하다”며 “한반도 비핵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화의 문은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동북아시아 국가인 몽골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자기 역할을 해나갈 것이며, 관련 국가들과 협력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몽골의 정치 체제는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고 있다. 바툴가 대통령은 원내 2당인 민주당 소속이고, 내각은 원내 1당인 몽골인민당이 주도하고 있다. 오는 6월 후임 대통령을 뽑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있는데, 최근 몽골 대통령 선거법 개정으로 현직 대통령의 연임이 금지되면서 그의 재선 도전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이와 관련해 바툴가 대통령 측은 “총리가 소속된 원내 1당이자 공산 정권 시절 집권 세력 후신 몽골인민당이 정권을 장악하려 무리하게 주도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바툴가 대통령은 지난달 “몽골인민당은 해산돼야 한다”는 대국민 공개 선언까지 하면서 몽골 정치권은 다소 어수선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바툴가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전에 한국이 거쳐갔던 각종 혼란상을 지금 몽골이 겪고 있는 중”이라며 이웃 국가의 관심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