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만난 평양의 젊은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보다는 자신의 일과 커리어를 더 중시했어요. 부모님이 남편감을 골라 데이트를 주선하는 것에 대해 진저리가 난다는 친구도 있었고요.”
영국 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던 남편을 따라 지난 2017년부터 2년간 평양에서 살았던 스코틀랜드 출신 음악 감독 린지 밀러(33)씨는 평양의 젊은 여성들이 변하고 있다고 했다. 이달 초 영국에서 사진집 ‘북한, 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곳’을 발간한 린지씨를 15일 오전(현지 시각)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북한은 가정 폭력, 성차별이 만연하고 여성 인권이 없는 것과 다름없는 곳”이라면서도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라고 했다. “2030대 여성들은 제가 음악 감독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고, 반면에 아이는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 흥미를 보였어요. 그러면서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해 속내를 비치기도 했어요. 부모님이 정해준 짝과 결혼하기 싫다는 대학생도 있었고, 아이를 갖지 않길 원하는 여성도 많았죠. 보수적인 북한 사회에서 이런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북한이었다. 2017년 9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실험 당일 날 아침 들은 굉음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밀러씨는 “눈을 뜨자마자 비행기가 낮게 나는 것 같은 소음을 들었는데, 꽤 오랜 시간 굉음이 이어졌고 나중에 뉴스를 통해 미사일 실험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날 아침 거리에서 본 평양 사람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학교에 가고 시장에 가는 등 일상생활을 유지해 놀랐다고 했다. 외국인 신분이었음에도 감시 체계를 체험한 적이 많다. 그는 “길에서 만나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던 평양 사람들이 한순간 표정을 바꾸고 갑자기 자리를 뜨는 경우가 있다”며 “주위를 둘러보면 어김없이 양복 입은 남자가 서 있었는데, 평양 사람들에게 암묵적으로 어떤 신호를 줬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집을 낸 이유에 대해서는 독재 정권 속에서 자신의 삶을 위해 분투하는 북한 주민에 대한 책임감을 들었다. 미사일 실험과 열병식 등으로 국제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북한 정권 너머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핵실험을 하는 정권 너머엔 그 지역에 사는 2500만의 평범한 사람이 있어요. 북한에서 태어난 건 그들의 선택이 아니잖아요. 그저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북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