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 시각) 한국인 창업가인 정세주(41) 대표가 미국 뉴욕에 세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눔(Noom)’이 미국 사모펀드인 실버레이크가 주도한 시리즈F 펀딩에서 5억4000만달러(약 6027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투자로 눔의 기업 가치가 37억달러(4조1300억원)가 됐다고 분석했다. ‘수퍼 유니콘(기업 가치가 1조원이 넘는 기업)’이 된 것이다.
눔은 사용자의 식생활과 생활 습관 등을 분석해 건강을 관리해주는 모바일 앱이다. 체중 감량을 돕고 스트레스 관리, 수면 지원, 당뇨병과 고혈압 관리까지 해준다. 현재 전 세계 회원 수는 4500만명이고 한 달에 59달러(6만6000원)를 내는 유료 회원은 250만명이다.
눔을 창업한 정세주 대표는 20대 때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일궜다. 전남 여수의 의사 집안에 태어난 그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자서전을 읽으며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 정 대표는 홍익대 전자전기공학과에 진학한 1999년 해외 희귀 음반을 수입해 유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틈틈이 모은 전 재산 350만원으로 ‘바이하드(Buyhard)’ 프로덕션을 차렸다. 사업은 반짝 잘됐지만 2001년 파일 공유 프로그램인 소리바다가 등장하며 쇠락했다.
그는 2005년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맨몸으로 세상에 나가 자신의 재능을 펼쳐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손에 든 돈은 500만원뿐이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2006년 브로드웨이 공연팀 아시아투어를 기획하는 일을 하다가 한국의 투자자가 부도나며 사업이 엎어졌다. 한동안 방에만 틀어박혀 살다 돈이 떨어져 할렘가로 집을 옮겼다.
실의에 빠졌던 그는 2007년 사촌동생의 친구였던 구글 수석 엔지니어 아텀 페타코브를 만나 새 사업을 시작했다. 바로 눔의 전신인 ‘워크스마트 랩스’다. 페타코브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아홉 살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해 구글맵을 개발한 천재였다. 두 젊은이는 헬스장에 테크놀로지를 도입하자는 뜻을 모았고, 헬스트레이닝 앱 ‘카디오 트레이너’를 출시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정 대표는 여기에 식단 관리 등을 더해 ‘눔’을 만들었고, 2012년엔 사용자들의 식단과 운동량, 건강 상태 등을 AI(인공지능) 기반으로 분석하고, 전문 코치가 관리해주는 ‘눔 코치 서비스’를 출시했다. 눔 코치는 이후 4년 가까이 구글 플레이스토어 헬스 분야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정세주 대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하게 먹고, 많이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기를 원하지만 이러한 행동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며 “눔은 행동 변화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고 했다.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눔의 매출은 수직 상승하고 있다. 2019년 2억달러(2234억원)였던 매출은 작년 4억달러로 2배가 됐다. 2년 전부턴 이익도 난다. IT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로 기업 가치가 높아진 눔이 머지않아 뉴욕 나스닥에 상장할 것으로 본다. 블룸버그는 이날 “눔이 1년 안에 100억달러(11조원) 규모의 IPO(기업공개)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