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이대양 작가가 자신의 캐릭터 ‘닥터베르’ 등신대와 함께 서서 발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는 아빠 ‘닥터베르’와 엄마 ‘닥터안다’가 아들 ‘레서’를 어깨 위에 올린 웹툰의 한 장면. /김연정 객원기자·네이버 웹툰

“일주일에 4시간씩 발레를 배워요. 양조에 관심이 있어서 맥주도 직접 만들고 있어요.”

자신과 거의 같은 크기의 ‘닥터베르’ 캐릭터 등신대 옆에 선 웹툰 작가 이대양(37)씨. 사진을 찍자고 하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발끝을 세우고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발레 자세를 취해 보였다. 집 안에 들어서니 지름 3.5m짜리 트램펄린이 거실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2017년 이 트램펄린 위에서 공중 2회전 점프를 시도하다가 머리부터 떨어져 경추와 흉추가 부러졌는데, 여전히 버리지 않았다. 어릴 때 별명이 무엇이냐 물으니 “고등학교 땐 ‘사이코’였는데, 대학교 땐 교양 있는 친구들이 많아져서 ‘유니크(unique)’로 바뀌었다”며 웃었다.

이씨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주부 아빠의 육아’를 소재로 한 웹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를 연재하고 있는 작가다. 웹툰계에서 흔치 않은 이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딴 ‘박사님’이다. 아내는 산부인과 의사. 공학박사(Ph.D) 아빠인 ‘닥터베르’와 전문의(Dr) 엄마 ‘닥터안다'의 좌충우돌 육아기를 담은 웹툰이 30대 부모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연재 200회를 앞두고 있고, 지난 4월과 5월 단행본 1·2권 출간도 마쳤다.

공학박사 출신의 네이버 웹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작가 이대양 씨가 경기도 안산 자택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원래 교수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박사 3년 차에 ‘아이고, 글렀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2015년 아들 ‘레서(웹툰 속 이름)’가 태어나면서 3년간 ‘육아 휴학’을 했다. “박사 학위도 제게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복학해서 학위를 마무리했어요. 하지만 학교나 연구소에 얽매여 있기보다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웹툰을 그리고 싶더라고요. 결국은 웹툰 작가가 천직이었던 거죠.” 이런 ‘스토리’ 때문인지 가끔은 학부모들에게 도움 요청이 오기도 한다. “작가님, 저희 애가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애한테 ‘작가가 되려면 그래도 공부도 좀 해야 한다’고 얘기 좀 해주세요” 같은 내용이라고 한다.

“천방지축 인생을 산 것 같아요.” 그의 다재다능은 웹툰에도 잘 드러난다. 육아 휴학을 하려는 그에게 교수가 ‘네가 바깥에 나가서 노래를 한들 박사 학위가 쓸모없을 것 같아?’라며 화를 냈는데, 그 말을 실험해보기 위해 노래를 작곡해 유튜브에 올렸다. 대학 재학 중엔 ‘공대생의 사랑 이야기’라는 소설을 썼다. 그림 실력은 트램펄린에서 추락해 3개월간 자리보전을 하는 동안 키웠다. “한 손만 가지고도 먹고살 방법을 연구하려고 그림 연습을 했는데, 정말 웹툰 작가가 될 줄은 몰랐다”며 천진하게 웃었다.

“2019년 9월 림프종 4기 진단을 받았어요. 계속 항암 치료를 받는데, 경과가 나쁘진 않아요.” 팬들에겐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덤덤하게 꺼내 놓았다. 웹툰 연재를 정식으로 시작하면서 동시에 혈액암 진단도 받은 건데, 그동안 작품에는 티를 내지 않았다. “힘든 시기가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연재는 독자와의 약속이니까요. 지각 한 번 안 하고 꾸준히 마감하면서 뿌듯하고, 보람찼죠.” 작품은 올해 안에 완결할 예정이다. 건강 문제는 아니다. “아이가 내년에 학교에 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올 연말을 연재 종료 시점으로 기획했다”고 했다. 완결 이후에도 할 일이 많다. “신곡을 두어 곡 발표하려고요. 노래방에 제 노래가 들어가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예요. 차기작으로 SF나 메디컬물, 발레물도 해보고 싶어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가 요즘 사인하면서 가장 많이 적는 말이다. “앞으로 공개될 제 이야기를 보고 건강한 분들은 건강을 잘 챙기셨으면 좋겠어요. 또 아픈 분들은 ‘그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